남해군내에는 문화재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제대로 잘 아는 이는 없고, 밖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주민들 중 모르는 이는 거의 없는 유·무형의 소중한 문화재와 전설 등이 많다. 이에 남해를 진정한 보물섬으로 만드는 소중한 우리의 재산을 찾아 함께 알아가고자 한다. 나아가 더욱 잘 가꾸고 지키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보자. <편집자 주>


밑줄 쫙!


임진성은…

임진성은 남면 상가마을에 소재한 산 정상에 둘레 286.3m, 산성 높이 1∼6m의 규모로 축조된 테뫼식(산정식) 산성이다. 이 때 테뫼식이라 함은 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수평으로 둘러쌓은 형태의 산성을 말하며, 단기 전투에 대비한 소규모 산성의 경우가 많다.
지난 1974년 학술적 연구 자원으로 인정돼 경상남도 기념문 제20호로 지정됐다.
산성 동쪽과 서쪽에 문을 낸 것으로 파악되나 현재까지는 동문터만 보이고 있고 성루, 훈병사, 감시사, 망대, 서당 등도 존재했다고 전해지지만 아직 발견된 바는 없다.
성내에 우물터와, 성벽 바깥으로 해자(물길)의 흔적도 보이나 아직 정확한 고증은 거치지 않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임진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민·관·군이 합심해 축성했으며 이에 따라 '민보산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선조 25년(1592) 5월 거제도 옥포만에서 이순신 장국에게 첫 패배를 당한 이른바 '옥포대첩'에 대해 왜적이 보복 공격을 해 올 것이란 소문이 나돌자 거제의 옥포와 이름이 같은 이 곳 옥포(남면 임진성과 평산진성 사이의 포구를 말함)에서 지레 방어를 위한 산성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1948년 발간된 남해군 향토지와 1958년 발간된 남해군지를 통해 성 축성 시 사천, 곤양 주민들도 부역에 동원됐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또 임진성과 민보산성 외, 예성이라는 별칭도 가졌던 것으로 문헌은 전하고 있다.

 

임진성은 지금


지표조사 통해 보다 정확한 의미 파악돼야

임진성은 지난 1979년부터 약 8회에 걸친 성곽보수 작업 외 역사 자료로서의 고증이나 지표조사가 이루어진 바가 없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아직 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비교적 근대에 기록된 문헌들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구전과 설들을 추측하고 덤불 사이로 모이는 문이나 우물터 등을 통해 임진성의 옛 모습을 가까스로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전해지는 문헌들에서도 논리적 오류가 있어 사학자들의 보다 정밀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남해문화원 향토사연구소의 김우영 소장은 "임진왜란 당시 이 고장에 이만한 성을 쌓을 만한 인력이 있었느냐하는 점이 의아하다"며 "문헌에 의하면 전쟁 중 7개월도 채 못 되는 시간 동안 아무런 장비 없이 이 성을 쌓은 것으로 나타나 있어 아무래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모호성 때문인지 현재 임진성 성밖 한켠에는 난데없는 정지장군의 얼을 기리는 후손의 비가 서 있다.

이 비는 정지 장군의 20대손 정인규씨가 복원해 군과 협의 후 지난 2004년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원래는 1977년 하주형 옹이 사비를 들여 상가마을에  '임진성기념관'을 지었고 정지장군 비석은 그 곁에 세워져 있었다.

기념관이 하주형 옹의 작고로 관리자가 없어 폐허가 되다시피 하자 정지장군유적보존회와 임진성기념사업회, 남면문화재 보호위원회가 정인규씨와 함께 비석을 임진석 인근으로 옮겼다.

그러나 임진성과 정지장군은 아무런 역사적 연관 관계가 없어 향토사학자들과 군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군과의 협의를 거쳤다는 기록과는 달리 남해군 담당자도 정지장군 비석의 존재를 의아해 하고 있다.

정지 장군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현 고현면 탑동에 장군의 얼을 기리는 정지석탑이 서 있어 비석을 이 곳 주변으로 옮기는 방안이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임진성 자체의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해 가중되는 혼란에 대해 남해군 담당자 역시 지표조사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기회가 되는 데로 임진성의 지표조사부터 해 나가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며 "인근 골프장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임진성에 산책로 등 개발 방안도 타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표조사가 시행돼야 할 문화재가 군내에 산재해 있어 임진성에 언제 차례가 돌아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조 기자 임진성 만나러 갑니다


뱀한테 물리면 마이 아파∼


임진성에 간다고 했더니 선배 기자가 귀띔을 한다.

"군내 최고의 데이트 코스"라고.

대상은 없으나 사전 답사(?)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임진성으로 향했다.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4월의 계절을 만끽하고 엘리엇의 시를 읊조리며 흡사 한 마리의 나비와도 같이 이리저리 임진성 안을 비집고 팔랑거리던 그때, '부시럭'하는 등줄기를 서늘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뱀이다.

임진성을 이룬 돌 하나 하나가 뱀의 비늘 같고 흡사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는 듯한 성의 모양새가 공포를 더욱 가중시킨다.

'악' 소리 한 번 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홀로 통곡을 거듭하다 겨우 추스르고는 허위 정보를 유출한 선배를 찾아가 따지기로 마음먹었다.

"큰 뱀이었냐, 물렸냐, 독사였냐" 며 걱정하는 선배에게 "잘 보지는 못했지만 약 15cm의 손가락 굵기 만한 크고 무서운 뱀이었다"고 전해주었다.

아직도 뱀 공포증(snake phobia)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배의 조소와 핀잔을 고스란히 받고 있지만 대한민국 육·해·공군으로부터 임진성 뱀 소탕 소식을 듣기 전에는 그 곳에 발걸음을 하지 않으리라.

식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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