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 음산한 지하계단을 지나 어수선한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의생활실’의 팻말이 걸린 철문이 나온다.

묵직한 문을 마저 열기까지 이 근처 어딘가에서 '규방공예'가 펼쳐지고 있다는 상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문 하나 너머에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규방공예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화려한 모시염색천에 현란한 바늘땀의 움직임이 숨가쁘다.

20여 명의 규방공예연구회원들, 일명 ‘반짇고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이 곳에 모여 박정애 선생에게 기술을 전수 받고 있다.

박정애 선생은 부산 토박이로 도자기를 전공으로 공부해 오다 섬유 공예 특히, 우리 규방공예에 매료돼 진로를 바꾸었고, 삶의 터전까지 이곳 남해로 옮기게 됐다.

박 선생의 공예에 대한 애정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회원들의 수준이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완전 초보 수준이던 이들이 불과 6개월만에 거의 일류에 가까운 작품을 내놓고 있어요. 강사로서 무척 뿌듯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박 선생이 제자들의 실력을 자랑하자 이어 연구회 김막순 회장은 “소수의 선봉장이 있기는 했지만 행정의 도움을 얻어 연구회를 발족하자 이곳에 모인 회원들의 열정과 의지가 날로 연구회의 발전을 돕고 있습니다”라며 연구회원들의 열정을 자랑하고 나섰다.

지난해 농촌기술원 전통생활기술작품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류수영 총무도 질세라 “공예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경험하는 인내와 성취감의 매력에 빠지면 쉬이 헤어 나오기 힘들지요”하며 공예의 매력까지 짚어주었다.

지난해 말 시범적으로 8주간의 수업을 하며 시작된 이들에게 남해군농업기술센터는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하며 올해 초 연구회의 정식 발족을 위한 예산을 확보해주었다.

이들은 4사분기로 나눠 수업을 진행하고 올 연말에 작품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지난 1월께 군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공예전시회를 보고 연구회에 합류하게 됐다는 한 회원처럼 이들의 전시회가 군내 규방 여인네들에게 반짇고리를 챙겨들게 할 것이다.

다시 묵직한 철문을 열고 나서며 또 한번 지나칠 음산한 복도가 떠올라 김 회장에게 물었다.

“환경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은데요?”

“아뇨, 전혀 불편한 줄 모르겠고... 아무도 불평 않던데요”

공예의 열정으로 눈이 멀었던지, 고운 천의 채색에 눈이 멀었던지 필시 둘 중 하나라고 속으로 주워섬기며 되돌아 나온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