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우씨가 어부가 된 것은 5년 전이다.
평생 공무원으로 일한 그가 어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특별히 물려받은 어장이나 큰 고기잡이배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래도 그는 평생 일한 대가로 받은 퇴직금을 바다에 오롯이 부어넣었다.

주변에서 뭐라는 사람도 있음직하지만, 한 번 결정하면 꼭 하고 마는 고집스러움에 아내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죽방렴이었다.

원시어업에 노후보장을 맡기다

ⓒ2006 김준
ⓒ2006 김준
죽방렴으로 유명한 경남 남해군 지족마을은 박씨가 태어난 곳이다. 50여 호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남해군 창선면과 산동면 사이에 자리한 마을. 수심이 깊지 않으며 물살이 빠르고 간만의 차이가 커서 일찍부터 어살을 막아 고기를 잡아 생활을 해왔다.

죽방렴은 갯벌에 V자로 참나무 등 기둥을 박고 대나무로 발을 치고, 끝에 '임통(불통)'을 만들어 들어온 고기가 나가지 못하도록 하여 잡는 전통적인 어법이다. 독살이나 개맥이처럼 서남해의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한 대표적인 어살의 한 종류이다.

어살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1469년(예종 1년) <경상도 속찬지리지> '남해현조편'에 나오는 오래된 어업으로 지족해협에서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지족마을에서는 박씨네 죽방렴을 비롯한 모두 23통으로 멸치를 잡아 생활하고 있다.

최근 죽방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이 곳은 갯벌체험과 죽방렴 멸치잡이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지난해 신청을 통해 죽방렴 체험을 한 방문객만도 7천여 명에 이르며, 그냥 와서 구경하고 간 사람들은 헤아리기 어렵다.

공무원생활을 오래 했던 박씨는 죽방렴 어업을 해본 적이 없는지라 처음 몇 년 동안은 월급을 주고 사람을 구해서 죽방렴을 운영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직접 멸치잡이에 나서고 있다. 어차피 여기서 말년을 이 곳에 살기로 터를 잡았는데 고기잡이를 피해 살 수 없지 않는가. 이제는 제법 어부흉내를 낸다.

욕심없이 때를 기다리면 멸치가 온다

▲ 죽방렴 불통 안에 들어온 멸치 그물로 잡기1
ⓒ2006 김준
▲ 죽방렴 불통 안에 들어온 멸치 그물로 잡기2
ⓒ2006 김준

그의 어부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몇해 전 태풍 매미로 죽방렴이 부서졌을 때 3천여만원의 보수비를 지출해야 했다. 그러나 특별한 고급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도 않으며 때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 죽방렴이라 금방 익숙해졌다.

지족마을에서 죽방렴을 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면허를 받아야 한다. 옆 죽방렴과 500m 이상 떨어져야 하고, 인근 어민들이 허락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새롭게 죽방렴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도 어촌마을의 갯벌이나 어장 운영은 법률보다 마을공동체에서 정한 규칙이 먼저 지켜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법보다는 마을공동체의 규칙이나 규범이 강한 규제력을 갖는 셈이다. 박씨도 새로 죽방렴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돈을 주고 죽방렴을 구입했다.

보통 죽방렴을 구입하려면 1통에 2억여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한 죽방렴은 3억원에도 거래된다. 새로 하려면 시설비가 1억여 원, 그리고 냉장고를 비롯한 각종 기계와 시설설비까지 함께 구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씨는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쏟아넣었다. 가두리 양식이나 전복 양식 등에 투자를 했다면 운이 좋을 경우 큰 돈을 벌수도 있지만, 젊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잘못하면 한꺼번에 바다에 넣기 쉽다. 하지만 죽방렴의 경우 큰 벌이는 되지 않지만 그저 부부가 노후 생활하기 알맞을 정도로 멸치를 가져다준다.


불통 속 불청객, 육지에서 온 쓰레기

박씨는 오전 11시 무렵 멸치를 담을 그릇과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 그리고 불통 안에서 멸치를 잡을 그물을 싣고 죽방렴으로 향했다.


대부분은 오늘처럼 박씨 혼자 '물'을 보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씨가 죽방렴을 선택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고,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노후에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처럼 물이 많이 빠지지 않는 '조금(조석간만 차가 가장 작은 때)'에는 '물을 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불통에 물이 가득해 장화를 싣고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물이 올라와 작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죽방렴 불통 안에 들어온 멸치 그릇에 담기
ⓒ2006 김준

학생들에게 수업용 자료로 사용한다는 나의 이야기에 박씨는 배에 시동을 걸었다. 다리 바로 위쪽에 위치한 죽방렴이라 배로 2~3분 거리에 불과하다. 예상대로 불통에는 물이 가득하다. 가로질러 놓은 작업용 작은 다리까지 물이 차 있었다.

박씨는 문을 열어보고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문을 여는 소리에 놀란 작은 고기 무리들이 이리저리 달아난다. 평화스런 불통 속 작은 바다가 소란스러워졌다.

불통 안에는 작은 고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쓰레기도 많이 들어와 있다. 늘 주워내지만 이 놈의 쓰레기 줍는 것이 고기를 잡아내는 것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잘피를 비롯해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것들도 있지만 모두 대부분 육지에서 내려온 것들이다. 바다쓰레기의 70%가 육지에서 버린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큰 비라도 오는 날이면 죽방렴 안은 쓰레기통이 되기 일쑤다. 20여분 동안 쓰레기를 걷어냈지만 물은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다시 물이 차오를 것 같다.

죽방렴 3번 걸음에 드디어 멸치잡이 구경

"날씨도 더운데 해수욕하는 셈 치고 한 번 들어가지."
"무리하지는 마세요. 안 들어가도 괜찮아요."


박씨가 하는 말에 이렇게 대꾸했지만 내심 여기서 그냥 돌아가면 어쩌나 했다.

고마운 일이다. 죽방렴을 보러 벌써 세 번이나 걸음 했다. 그렇지만 멸치를 잡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우연히 연이 닿아 배를 타고 죽방렴 속으로 들어온 것도 처음이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물때가 좋지 않는 것을 원망했다. 하필이면 오늘이 조금이란 말인가.

▲ 죽방렴을 뒤로하고 멸치를 삶는 멸막으로
ⓒ2006 김준
▲ 우리 소금을 넣고 끊인 물에 멸치삶기
ⓒ2006 김준

내 맘을 읽었던지 박씨가 채비를 하고 불통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불통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불통이 양쪽 날개와 연결되어 멸치가 들어오면 좀처럼 나기기 어려운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게다가 물길이 바뀌면 불통의 입구는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 있다.

죽방렴의 불통 속 멸치를 잡는 것을 '물을 본다'고 한다. 물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안에 들어올릴 수 있는 그물을 설치해 놓았다가 멸치를 잡는 방법과 그물을 가지고 물 속에 들어가 멸치를 건져오는 방법이다. 전자가 손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품질 면에서 후자보다 못하다.

박씨가 선택한 방법은 후자다. 먼저 준비해간 그물의 한 쪽으로 불통 입구를 막는다. 그리고 서서히 불통을 에워싸서 입구를 막아놓은 그물과 합쳐서 그물을 감아 들어 올린다. 마지막으로 뜰채를 이용해 수면 가까이 들어 올린 그물 안에서 멸치를 퍼 올리면 된다. 그릇에 담긴 멸치들과 함께 튄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에 비쳐 눈이 부시다.

상처없이 잡힌 신선한 멸치들

죽방렴 멸치가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멸치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신선도 때문이다. 전혀 상처를 입지 않고 잡은 멸치를 솥에 넣고 삶기까지는 채 30여 분을 넘기지 않는다.

멸치 삶는 솥이 있는 막에 도착하자 박씨는 솥에 물을 넣고 소금을 넣고 불을 지핀다. 제법 익숙한 솜씨다.

이 곳에서 죽방렴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금은 모두 전남 신안의 비금소금이다. 국산천일염을 사용해야 맛이 좋고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금도는 서남해안에서 최초로 천일염을 생산했던 지역이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염전을 갖고 있다.

그 사이 그의 아내는 잡아온 멸치에서 잡어들을 골라낸다. 이번에는 갈치새끼, 호래기(꼴뚜기), 메가리(전갱이), 새끼도미, 새끼넙치 등이 들어왔다. 멸치를 손질해 소금 간을 해 놓고, 나머지는 오늘 횟감으로 점심을 대신할 모양이다. 손을 걷어붙이고 손질을 도왔다. 끼니를 해결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물이 뜨거워지자 멸치가 솥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동시에 솟아오른 김에 박씨의 얼굴이 묻혀 사라진다. 그리고 멸치들이 물위로 떠오를 무렵 박씨 얼굴도 희미하게 드러난다. 투명하고 반짝이던 빛깔은 어디 가고 삶아진 멸치가 한편으로는 안됐다 싶다. 멸치들은 건져 올려 채반에 담겨 가지런히 정리되었다. 이제 물이 빠지면 햇볕에 말린다.

건조기로 습기만 제거한 멸치가 최고

▲ 삶은 멸치 볕에 널기
ⓒ2006 김준
▲ 멸치말리기
ⓒ2006 김준

오늘처럼 햇볕이 좋을 때는 바닷가에 말리지만, 햇볕이 나지 않을 경우나 비가 올 경우에는 건조기를 이용해 기계로 건조한다.

멸치색깔이나 상품으로 본다면 균일하게 건조하고 색깔을 깨끗하게 낼 수 있는 건조기가 더 좋다. 맛과 영양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소비자는 색깔을 보고서 태양에 자연건조를 한 멸치가 색깔이 좀 떨어지면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색깔이 좋고 영양도 좋은 것은 건조기를 이용해 찬 바람으로 멸치의 습기만 제거한 것이다. 하얀 색이 보기도 좋고 영양도 뛰어나 높은 가격을 받는다.

과거 냉장시설이 충분하지 않았을 때는 햇볕에 말린 멸치가 최고였지만, 집집마다 냉장보관시설이 있는 요즘엔 기계 건조한 색깔좋은 멸치를 선호한다. 햇볕에 '꼬득꼬득' 해진 멸치를 다시 기계건조하기도 한다. 그래야 온전히 햇볕에 말렸을 때 약간 누런 색깔로 변하는 것을 막으면서 기름값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틀 정도 말린 멸치는 다시 크기에 따라 선별해서 포장을 한다. 지금은 선별도 기계로 하기 때문에 일거리가 많이 줄어들어 부부노동으로도 될 정도다. 과거에는 죽방렴을 하는 사람들은 2~3명의 일꾼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일거리가 많았다.

하지만 선별 후에도 품질이 좋지 않는 멸치가 들어가 있는지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지 않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골라내야 한다. 멸치 한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알 수 있다.

죽방렴 멸치는 한 포(2kg)에 품질이 가장 좋은 것은 30~40만이라는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4~5만원이라니 일반 멸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가격을 받는다.

참꼴뚜기에 소주로 점심... 아, 달다

죽방렴 멸치잡이는 4월에서 시작해서 11월까지 계속되며, 특히 6월과 7월이 가장 성시를 이룬다. 조금(음력 8일, 23일)을 전후해 2~3일은 멸치잡이를 하지 못하며, 장마철에도 작업이 어렵다.

이렇게 며칠을 빼고 나면 한 달에 20일 정도 작업을 한다. 보통 죽방렴 자리가 좋은 곳은 일년에 1억에 가깝게 소득을 올리지만, 자리가 좋지 않으면 3천여만원에 그치기도 한다. 멸치 어획량으로 보면 6월에서 7월에 잡히는 양이 연간 어획량의 60~70%를 차지한다.

"1년이면 얼마나 소득이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멸치와 함께 들어온 아지·갈칟꼴뚜기를 손질하던 박씨의 아내가 "먹고 살 만큼 잡힌다"고 대답한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도 아니고 자연이 주는 선물인데 어떻게 자로 잰 듯 소득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 멸치와 함께 들어온 참꼴뚜기를 손질해 소주안주를 했다.
ⓒ2006 김준

이제 남은 일은 죽방렴에 들어온 횟감을 손질해 먹는 일이다. 소주도 곁들였다. 최고의 횟감이다. 꼴뚜기, 정확히는 참꼴뚜기란다. 먹통이 작은 녀석들을 직접 손질한 탓인지 맛이 남다르다.

작은 몸통을 가르고 내장을 빼낸 다음 투명한 셀로판같은 것을 들어낸 다음 잘 씻어내면 된다. 초장에 찍어 입안에 넣었다. 달콤하면서 짭짤한 맛, 소주 한 잔도 곁들였다. 날씨가 더워서 낮술은 어울리지 않지만 이렇게 좋은 안주를 놓고 '소주를 한 잔 해야지' 하는 박씨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거들었다.

이날 점심은 걸렀다. 죽방렴에서 잡은 꼴뚜기와 작은 생선으로 배를 채웠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