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읍 심천리 출신의 KB오토시스(주) 김용웅(80) 회장을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 위치한 KB오토시스(주)에서 만났다. 몇 년 전부터 취재를 부탁했지만 “신문에 싣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거절하다가 끈질기게 부탁했더니 3년 만에 방문하라는 말씀에 아산시로 달려갔다.

사무실에는 자랑스런 기업인상, 벤처기업 대상, 수출유공자 표창, 품질경영활동대회 대상, 기술부문 산업포장(대통령), 기술대상, 무역의날 표창, 밝은 사회를 위한 범죄예방 한마음대회 국민포장, 노사문화유공 금탑산업훈장, 각종 감사패 등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1985년 ㈜한국베랄을 설립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후 ㈜한국베랄 회장, 충남북부 상공회의소 회장, 대전MBC 경영자문위원회 위원장, 충남 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 충남문화산업진흥원 이사, 대한민국 국제농기계·자재박람회조직위원회 위원, 아이낳기 좋은세상 충남운동본부 위원 등을 역임한 충남의 터줏대감이다. 김 회장의 인생역정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KB오토시스(주)가 어떤 회사인지 소개해달라.
“인류의 안전과 세계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 창조기업 KB오토시스는 기계적 브레이크 패드(마찰재) 및 라이닝 개발생산 회사이다. 1985년 설립이래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국내 마찰재 회사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힘써 온 KB오토시스는 자동차 제동분야의 선두기업이다. 1985년도 당시에는 자동차 생산 품목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는데 수입대체 품목으로 개발해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도록 했다. 고객의 안전과 행복을 실현하며 오랜 기간 축적된 독보적 마찰재 생산기술과 독창적인 자동화 시설을 바탕으로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 글로벌 제조기업이다. 1994년 코스닥 상장 이래 지속적인 성장으로 폭넓은 고객선 구축과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확보했다. 37년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북미공장 신축을 통한 시장 점유율 확대와 해외 신규고객 창출로 세계시장에서 선진 기업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임직원의 복지구현을 통해 초일류 기업으로 비상하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을 일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오셨나?
“제일의 창의발휘, 제일의 품질생산, 제일의 복지구현이라는 사훈 아래 “자동차 브레이크 불량은 한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다”라는 경영이념으로 생산하는 모든 제품에 혼을 불어넣어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끊임없이 연구 개발하여 국내 OEM 1등을 넘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오직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열심히 일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고비는 언제인가?
“1998년 말 IMF 외환위기 직후 대우차, 기아차, 만도 등 대기업 3곳이 부도를 맞으면서 협력업체였던 우리 회사에도 불똥이 튀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재를 출연해 기업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를 직원들에게 보여줬고, 임직원들은 급여 반납 등의 노력으로 응답하여 무사히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다. 또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지난 IMF에 버금가는 경제적 타격을 맞아 기업 운영에 어려움이 찾아왔으나 노사 간의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영 안정화 및 생산성 향상을 이루었다. 회사는 근로자들의 헌신에 대한 보상으로 생산성 향상 인센티브와 우리사주에 참여할 수 있게 해 KB만의 공동체 의식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시장 외에 주요 시장은 어디인가? 주요 고객사는 어떤 곳이 있나?
“주요 수출국은 미국/멕시코(30%), 중국(26%), 인도(18%)는 물론 슬로바키아 등 기타지역(26%)으로의 구성되어 있다. 국내 완성차 5개사 현대, 기아, 쌍용, 르노삼성, 한국지엠과 부품사 현대모비스, 만도, ERAEAMS, 글로벌 완성차 및 부품사인 Global GM, Ford, STELLANTIS, GEELY, ZF, Continental 등 폭넓은 고객선을 구축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로 급속하게 개편되고 있다. KB오토시스는 앞으로 어떤 대응전략을 가지고 있나?
“전기차(EV)는 기존 내연기관 대비 소음이 적으나 배터리 장착으로 인하여 차량의 무게는 증대된다. 당사는 EV가 요구하는 고성능과 함께 NVH 특성이 우수한 마찰재를 개발해 양산 중이다. 현재 국내 전체 EV 차량에 적용, 판매하고 있으며, GM 볼트 차량에도 당사 마찰재가 적용되고 있다. 당사는 우수한 배합 기술과 신소재 개발 노하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EV 전용 마찰재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 앞으로 개발될 EV에 적용할 예정이다. 시장 선점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당사의 마찰재가 EV 산업의 선두주자가 되고자 한다.”

▲고향 출신 기업인들과 후배들, 고향분들에게 한 말씀 하시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무조건 대기업을 선호하는 풍조에서 벗어나 외국인 근로자들이 중소기업에서 돈을 버는 모습에서 배워야 한다. 젊은이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어떻게 세계와 경쟁할 것인지 생각해 보고 각자의 사정에 따라 눈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국내 자동차 회사는 창업 초기 모든 자동차 부품을 수입에 의존했으나 우리나라가 무역 강국이 되면서 분위기가 역전했다. 이러한 위상 변화에 따라 청년들도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 세계 최고가 된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나는 80이 넘었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에 헌신하겠다.”

▲고향 남해에 대해서는 어떤 추억을 가지고 계시나?
“가난과 배고픔에 이웃 아저씨를 따라 12세 때 강진바다 낙지잡이를 갔는데 태풍을 만나 밤새도록 거센 파도와 싸우며 표류하다가 새벽 동틀 무렵 구사일생으로 창선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외딴집 사람의 도움으로 지치고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면서 회복하여 일주일 만에 심천리 마을로 돌아왔는데 죽은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살아서 돌아와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와 반가워하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고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 남해의 발전방향에 대해 생각한 것이 있으시면 알려달라.
“남해를 떠나서 성공한 향우들이 경향각지에 많은데 1년에 한 번 종합소득세를 국가에 내고 있다. 이 가운데 50%는 고향에 보내는 법을 국회의원이 만든다면 남해군이 발전할 것이다. 또한 남해를 멋진 관광지로 개발해 스위스처럼 평화롭고 잘사는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스위스는 산악지대라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의 작은 나라지만 근대 들어 부국으로 성장했다. 시계와 정밀기계, 바이오제약, 의료기술, 관광 등이 기반이 됐다. 스위스인의 특성은 ‘쉴 틈 없이 일한다’는 점이다. 농한기에 가족들이 집에서 하청을 받은 데서 시작해 부품을 개량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스위스 명품 시계가 탄생했다. 남아도는 우유를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치즈를 개발하고 산업화해 세계 최대의 식품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남해는 이미 천혜의 자연을 갖고 있다. 다른 곳에서 따라올 수 없는 인심과 편안함을 관광객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한 번 찾았던 사람을 다시 오게 만들어야 한다.”

김 회장은 2011년 7월 EU와 FTA가 발효되기 전인 5월 중순 몇몇 기업인들과 함께 유럽을 방문했다. FTA가 발효되면 유럽에 어떤 품목들을 수출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유럽 도착 첫날 밤 김 회장은 대동맥이 터졌다. 일행들이 영사관에 연락했고 헬기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김 회장은 한국에 돌아와서 수술받기를 원했으나 현지 의사들이 일분일초가 급하다며 김 회장을 설득해 수술했다. 새벽에 영사관 사람들부터 현지 의사들까지 김 회장을 살리기 위해 애쓴 덕분에 김 회장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은 “그 새벽에 나를 살리기 위해 애써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라에 빚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든 동체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엔지니어로 시작했던 김 회장은 중년이 되어서야 경영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오너는 현장에서 뛰면서 직원보다 10배는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 회장은 “회사에 출근하는 한 내가 제일 많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직원들만 일하고 오너는 뒷짐만 지고 있다면 살아남을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KB오토시스 연구소에는 이론에 밝은 박사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도 이론을 현장에 응용하는 방법을 찾는 데는 김 회장을 따라오지 못한다. 김 회장은 “연구는 계속 응용해야 한다”며 “나를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14세 때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부산으로 가 처음에는 정비공장에서 심부름을 하다가 노력하여 유신교통 택시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가난하고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부산에서 최초로 운전기사 자녀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회사를 키워 운영하면서장애인 등 취약계층과 중장년층의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아 지역사회 활성화에도 크게 공헌했다. 소년동아에서 출간한 동화책을 남해초에 기증하기도 했다. 회사 창립기념일에는 매년 아산 지역의 저소득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백미와 전기밥솥 등을 전달해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김 회장은 2017년 고용노동부 노사문화 유공 정부포상 시상식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 구조조정 없이 위기를 극복해 노사간 믿음과 신뢰를 굳건히 다졌고,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 운영 등 가족적 기업풍토를 조성한 결과 30년 노사 무분규를 이뤄낸 성과였다.

취재를 마치고 느낀 것은 김 회장의 뛰어난 경영능력 뒤에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겸손한 인품으로 남을 먼저 배려하고,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최고의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생하게 확인한 값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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