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길 호 보물섬스마트관광택시 기사
정 길 호
보물섬스마트관광택시 기사

힘들고 무섭고 외로웠던 그 시절, 오롯이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한 통의 손 편지로 힘을 얻어 왜소한 자기 체구보다 크고 무거운 장비를 지고 죽기 살기로 견뎌야 했던 긴 세월, 살아서 돌아가자고 몇 천 번 외쳤던 그때 그 사람들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또한 젊은 처녀들은 몸집이 큰 거구의 환자를 상대로 몸을 닦고 배설물을 받아내야 했고 당시 ‘코리아 엔젤’이라는 찬사를 받는 간호사들이었지만 긴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지금은 노인들이 되어 있지만 지나간 세월의 흔적 앞에 눈물만 흐를 뿐이다.  

얼마 전 남해읍 대형마트 앞에서 생필품을 구매하여 무겁게 들고 누군가가 택시를 세웠다. 80세 가까이 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손님 어데로 가세요’라고 물었더니 “독일마을로 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여 차에 태우고 독일마을로 향했다. 가는 도중 대화를 나누었더니 파독 간호를 지낸 분이셨다. 나는 ‘이렇게 좋으신 분을 모시게 되어 정말 기쁜고 반갑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역군이시군요’ 하면서 가는 도중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분께 한 가지라도 도움을 드릴 수 없을까 생각한 끝에 ‘손님, 오늘 생필품을 많이 사셨는데 이제부터 먼 곳까지 차비 쓰시고 안 오셔도 물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했더니 매우 흡족해하셨다. 독일마을과 가까운 마트에 전화하여 주문하면 직접 배달서비스를 해 주고 있는 곳을 소개해 드렸다. 

과거 독일이라는 나라는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다시 일어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 강대국으로 부상한 선진국이다. 우리 청년들은 한강의 기적을 꿈꾸며 그곳에 희망을 가지고 떠났다. 그 후 그들의 피와 땀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생겼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 10위 강대국이 되었다. 

그 무렵 월남 전쟁이 한창일 때, 우리의 젊은 청년들은 자유통일을 위해 수만명을 파병했다. 긴박한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겠다는 조건하에 박정희 대통령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파병용사 또한 외화벌이에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 우리의 청년들이 많이 희생됐다. 전사자 5000명, 부상자 1만 1000명이었다. 고귀한 생명들이 멀고 무더운 타국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50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 전 남해읍 유배문학관에서 한국전쟁, 월남전쟁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마을 골목 친구들과 전쟁놀이라면서 머리에 바가지를 쓰고 작대기를 총이라고 쏘면서 월남 노래 군가를 많이 불렀다. 그중에서 맹호부대 노래를 소개한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킵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임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너무나도 많이 불러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과거 독일로 떠난 그들이 이제 그리움을 찾아 남해 독일마을로 왔다.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의 새로운 고향이다. 이국 땅에서 젊음을 보낸 그리운 고국의 향수를 갈망하는 그들을 위해 따뜻한 정이 넘치는 노후를 즐기도록 조성된 마을이다. 

비탈길 지개길 야산을 개발하여 택지를 만들고 주변의 오래된 노송과 사철나무들을 베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아름다운 경과 공원을 조성해 자연적인 풍광을 뽐내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마을이다. 

현재 남해 관광 1번지 독일마을은 누군가가 긴 시간 많은 정성과 손길이 닿아 큰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두관 전 군수를 비롯해 당시 공무원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치환, 신동관 전 국회의원이 남해대교 건설로 남해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그 공로로 지금도 군민들에게 영원히 추앙받고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섬, 대한민국에서 4번째 큰 보물섬을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미래의 남해는 관광산업이다. 대한민국 관광 1번지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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