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신문’이 창간된 1990년은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그리고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 새벽 벽두부터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세 사람 다 고인이 되고 말았지만, 끝없는 시위와 최루탄과 교통통제 등으로 시끄러웠던 이 땅에 민주화의 꽃이 피고 비로소 열매가 맺히는, 흡사 보리밭을 훑고 지나가는 5월의 훈풍 같은 시기였다.

그즈음만 해도 지방신문, 그것도 작은 섬 지방에서 발간되는 정기간행물의 출현은 신선, 그 자체였지만, 한편으로는 무모한 모험일 수도 있었다. 재정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군부독재 횡포에 의해 하루아침에 폐간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 질풍노도의 시절 어느 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대로 닭의 목을 비틀어도 기어코 오고야 마는 새벽인양 ‘남해신문’이 훼를 치고 고고하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남해신문’은 한 호의 결호 없이 32년을 든든하게 버티어 왔다. 남해신문과 궤를 같이한 다른 지역신문들은 거의 스스로 문을 닫았거나 타의에 의해 주저앉았거나 했는데도, 유독 ‘남해신문’만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도 지역정신과 지역 문화를 대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머리 없는 내가 보기에도 신문의 질이나 패기보다 신문을 기다리며 펼쳐보는 독자의 강인한 의지가 그것을 주도하지 않았는가 싶다. 다시 말해 남해 사람들의 기질이 바로 그것이다.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혹은 직장 때문에 어쩌는 수 없이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애착이, 바다만 봐도 뭉클해지는 고향 사랑이, 고향 땅은 끝까지 지켜 온 터줏대감의 외골수, 일편단심이 ‘남해신문’을 더 튼튼히 성장시킨 기폭제일 것이라고 나는 감히 주장해 마지않는다.

지역신문을 귀히 여기고 끝없이 아꼈던 남해 섬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오늘에 이른 ‘남해신문’의 또 한 가지 업적은 남해 인맥의 발굴이다.

남해신문 편집국장을 거쳐 경남도지사와 행정자치부 장관, 그리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까지 올랐던 김두관 의원이 그러하고 남해군수를 역임한 정현태씨가 그러하다. 

그 밖에도 꿈틀꿈틀 미래의 대한민국을 책임질 수많은 인재들이 남해 섬 안에 즐비하다는 점도 ‘남해신문’의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꼽힌다.

32주년을 맞는 ‘남해신문’ 축하 메시지를 10년 후인 2032년데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도 남해출신 대통령 얘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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