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창의력과 집중력만이 아닌 생각의 폭까지 넓혀준다. 한자로 산(散)은 ‘흩다’ ‘한가롭다’와 함께 ‘나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책(策)은 ‘꾀’ ‘서적’ 외에 ‘헤아리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처럼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헤아리고 이를 누군가와 나누는 게 산책이다. 

산책에는 앞뒤 경계가 없는, 문장으로 치면 자유로운 산문(散文)과 같다. 형식의 제약도 없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며, 걸음걸이도 제 마음대로다. 혼자 길을 나서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여유롭게 걷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들린다. 

다들 바빠서 산책할 시간이 없다고들 하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한가롭게 남해읍 가로수의 새움이 돋아나는 것을 바라볼 ‘틈’만 있어도 충분하다. 가로수 길을 지나면서 사람소리, 운 좋게 새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걷기가 창조적 사고력을 60% 이상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천히 걷는 동안 우리의 뇌는 학습과 기억을 다루는 부분의 혈류가 늘어난다고 한다. 12분간의 산책만으로 주의력이 높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미국심리학회 연구 결과도 있다. 

산책은 또한, 심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심장과 폐가 튼튼해지고 근력이 강화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된다. 산책은 혈류량이 늘어나 치매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고 매일 20~30분씩 햇볕을 쬐면 하루 필요량의 비타민D가 생성된다. 뇌 속에서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도 많이 나오고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과 결합해 숙면을 돕는다는 것이다. 

산책 코스는 남해읍 시내를 걷는 것 보다 나무와 숲이 있는 남산공원, 바다가 있는 입현 매립지 등을 택하는 게 좋다. 캐나다 학자 마크 베르만은 “자연공원을 거닐면 인지능력이 20% 더 향상되고, 숲의 녹색 덕분에 뇌의 알파파가 잘 분비돼 마음도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길에서 나온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영감을 얻고 싶을 때마다 산책에 나섰다고 한다. 혼자 걷거나 다른 사람과 동행하기도 했는데 애플의 디자인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와는 15년간 거의 매일 함께 걸었고, 그 길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산책 교감’을 통해 신제품 아이디어들을 공유했다고 한다. 임원들과도 테이블 회의보다 함께 걷는 ‘산책회의’를 더 선호 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애플의 혁신 제품들이 그런 산책 회의에서 결정되고 탄생했다고 한다. 

애플에서 쫓겨 난 후 잡스는 애플의 아멜리오 최고경영자(CEO)를 초대해 집 근처를 두세 바퀴 정도 도는 동안 아멜리오는 잡스의 비전과 열정에 완전히 매료됐고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의 회의 방식은 걷는 것”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또한 잡스에게 영감받아 걷기를 즐기고 직원 채용 여부 결정전 대상자와 숲길을 함께 걸으며 상대의 인성과 장단점을 분석하는 ‘산책 면접’을 본후 즉석에서 채용을 결정한다고 한다.

식사 후의 산책은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데, 포도당이 지방으로 변환되는 속도가 더 빠르므로 식사 후 꼭 걷는 게 좋다는 것이다. 남산공원이나, 선소 심천의 바다길. 장항 숲, 물건방조 어부림, 스포츠 파크, 상주, 송정 송림 등 산책할 만한 길은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옆에 지척에 널려 있다. 한적한 오솔길을 걸으며 잡스와 저커버그처럼 반짝이는 영감을 만날지 모른다. 

최근 남해 제일고 입구에서 입현의 매립지 앞까지 냄새나던 북변천이 수질등급 1-2등급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지난 봄비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냄새 나던 북변천 570m 구간에 119억이 투자되어 공원까지 만들어져 걷다가 힘들면 쉬어갈 수 있는 쉼터까지 조성되어 있다. 쉼터의 길섶에 연두색 풀잎이 돋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 이 찬란한 봄, 앉아 있지 말고 걸어 보자. 그리고 자연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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