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고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확실하게 봄이 왔다는 느낌은 벚꽃이 피고 나서야 느낀다. 겨우내 움츠려있던 나무들도 꽃망울을 터뜨릴 이 시기만을 기다려 왔으리라.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봄꽃들도 추운 겨울 움츠려있다가 힘들게 꽃을 피운다. 

꽃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겐 고통이지만 봄꽃은 설렘과 새롭게 시작하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사계절 중 봄은 겨울 뒤 찾아오는 계절로 새롭게 시작함을 상징하는 느낌이고 흔히 봄은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한 때'로 비유되기도 한다. 젊음, 청춘의 춘(春)이 곧 봄이다. 그래서 봄은 긍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봄꽃 하면 단연 벚꽃을 떠올린다. 벚꽃은 개화 후 며칠이면 만개하지만, 곧 지고 만다.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지만, 초속 5cm,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라고 한다. 빠른 것 같지만, 시속으로 환산하면 0.18㎞, 시간당 180m를 가는 것에 불과하다. 초속 5cm에 집착하면 빠른 속도지만, 시속으로 환산하면 엄청 느리다. 

우리의 봄을 찬란하게 밝히는 벚나무는 수명도 짧다고 한다. 1000년을 넘게 사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에 비하면 짧은 수명이다. 구례, 하동 등 유명한 벚꽃길에 서 있는 큰 나무들이라고 해 봐야 겨우 150년 안팎의 세월 정도라는 것이다. 

세상의 꽃들이 다 아름답지만 벚꽃은 더 그렇다. 겨울내 추위 속에 있다가 만발한 벚꽃 속을 거니는 감흥은 정말이지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거리를 ‘좋아하는 사람과 단둘이 손잡고’ 걸으면 ‘알 수 없는 떨림’이라는 가요의 가사처럼 충분히 느낄 만하다. 

그런데 서면 예계, 남면 구미덕월 등 남해의 벚꽃 명소도 여러 곳에 있는데 왜 벚꽃구경 하면 설천 왕지 벚꽃길을 첫손으로 꼽을까?

지난 주말 차량 통행이 많아 주차할 곳이 어렵다는 판단에 설천 왕지 로타리 클럽의 공원에 차량을 주차하고 왕지벚꽃길까지 1km가량을 걸어서 갔다. 올해의 벚꽃은 지난주에 내린 비로 그런지 유달리 환하다 할 정도로 만개했다. 약 2km의 벚꽃길을 걸어가면서 노량 앞바다, 산, 남해대교와 조화되어 펼쳐지는 이렇게 아름다운 벚꽃길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 것인가 싶다. 

남해 사람들은 벚꽃 구경하면 왕지 벚꽃을 꼽고 사람 많이 모이는 그 복잡한 곳을 찾아가는 이유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가서 보고, 걸어보면 저절로 몸으로 느끼고 알 수 있다. 우리는 꽃들이 봄이면 ‘그냥’ 피는 거라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꽃들의 세상에서도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고,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조금이라도 더 오래 피어 있으려 할려면 뭔가 달라야 하는데, 산수유는 ‘가늘고 길게’ 천천히 피고 오랫동안 필 때 벚꽃은 역발상 전략으로 ‘짧고 굵게’ 피우면서 작은 꽃들을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피우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오랫동안 피워 길게 가면 좋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 전력투구했다가 초식동물에게 먹히거나 비바람에 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벚꽃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작은 꽃들을 잔뜩 준비했다가 한 번에 터뜨리는 것일까. 어느 봄날 갑자기 확 피어 벌과 나비 같은 매개동물들과 우리 인간들의 눈을 확 사로잡아 버리는 꽃이 바로 벚꽃이다. 활짝 핀 왕지 벚꽃길은 어떻게 소문을 듣고 알고 왔는지 전국에서 너나없이 몰려와 주말 내내 도로가 벚꽃과 사람으로 가득했다.

벚꽃은 코로나로 답답했던 세상을 환하게 밝히며 꽃구경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참고로 벚꽃은 아름답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일본 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은 벚꽃을 국화로 공식 지정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벚꽃이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고 일본의 새 학기는 벚꽃이 만발한 지금 4월에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보는 왕벚나무의 원산지도 제주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잎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라는 가사처럼 따뜻한 봄날이 만져질 듯한 ‘봄나들이’의 동요는 많이 알려지 있는데 봄의 대명사 벚꽃과 관련한 봄의 동요는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지만 알지도 못한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는 인식으로 아예 음악가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어서 빨리 코로나19가 물러가서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봄 노래를 크게 합창 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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