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밀물 최민렬 향우가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6일까지 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서예의 대가답게 1층 31점, 2층 43점. 3층 35점 총 109점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구덕순 재경남해군향우회 회장, 이환성 단양관광호텔 회장, 정현태 전 남해군수 등과 전국의 서예가, 지인들, 향우들이 대거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3층에는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 ‘장지(壯紙)’에 쓴 작품만 전시했다. 고서적을 수집하며 종이도 연구한 최민렬 향우는 “화선지는 몇십 년만 지나면 부식된다. 하지만 옛날 닥나무를 찧어서 만든 한지, 그 중 장지(壯紙)는 수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장지는 지금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옛날에 만들었던 종이를 구입해서 사용하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장지를 이용한 작품만을 별도 공간을 만들어 전시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2022년 10월 중 고향 남해군에 또 하나의 문화명소를 탄생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귀향을 앞둔 그가 서울 생활을 마무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더 늦기 전에 시행했다. 가르치던 제자들도 이제는 혼자 정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개인적으로는 넓은 작업실에서 대작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컸다. 고향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더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민렬 향우는 자신의 작품과 수집한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곳에서 서예 아카데미도 개설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강의도 열고 상설전시도 진행한다면 청년시절 꿈꿨던 ‘운림산방’을 남해에서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의 계획은 “40여년 넘게 고서적, 고미술품 등을 수집한 것을 고향 남해에 박물관을 마련하여 고향의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것. 남해에 서예미술박물관이 생긴다고 하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최민렬 향우는 1982년부터 한글서예를 독학으로 공부해오다 1984년 근현대 한국서단을 이끌었던 일중 김충현 선생의 제자인 초정 권장륜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40여년을 배워 지금의 국전 초대작가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한문 뿐 아니라 다양한 서체의 한글을 잘 쓰는 서예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50년간 수집한 서적과 그림이 1500점이 넘는다. 귀한 그림과 서적도 많다. 특히 그를 한글서예가로 이끌어 준 서적이 바로 조선시대 궁에서 일한 ‘서사상궁’이 작성한 ‘내서(內書)’다. 궁중에는 임금의 명령이나 편지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서사상궁’이 있었는데 이들에 의해 한글 서체가 체계화되고 아름답고 쓰기 편한 필사체가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궁체’다. 단아한 궁체는 글을 쓰는 상궁에 따라 조금씩 달라 한글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내서가 3권 있는데 한글박물관에서 꽤 큰 금액에 구입의사를 밝혀왔다. 그런데 나중에 고향에 전시장을 만들면 전시하고 싶어서 개인 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서예를 처음 시작한 그를 두고 현대 ‘캘리그래피’의 선구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서예가로 이름이 높아지자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대전대, 원광대, 단국대, 경기대, 경희대 등 전국 곳곳을 누비며 강의했다.

지금은 다 정리하고 경희대에만 출강한다. 그의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이제는 함께 작품 활동을 하는 서예가로 성장했다. 전국 어디나 강의를 다녔기 때문에 어딜 가나 제자들이 있어 그들이 큰 재산이다.

최민렬 향우는 항상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서예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2005년 5월, 2007년 11월에 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초대개인전(우림화랑)으로 조선시대 한글서예자료전(백악미술관)을 펼침은 물론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경기미술대전 서예부문, 동아미술제, 전국휘호대회에 초대 및 심사에 참여하였다. KBS 전국휘호대회 금상을 비롯한 수많은 수상기록을 가지고 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