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내내 짧았던 밤의 길이가 길게 여운을 드리울 즈음,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봄기운을 만끽해봅니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임에도 동네를 가로지르는 공기는 뼛속마저 시원하게 해줄 정도입니다. 계절이 교차하였음에도 차가운 날씨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도 봄의 향연을 기대하는 것은 거기에는 가슴 부풀게 하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다움의 징표라 할 다정함과 따뜻함과 같은 본성의 기운이 스며있기 때문입니다. 

봄의 정서가 이러할 진대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얼마만큼 이러한 정서를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봄은 왔건만 봄이 우리의 마음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따뜻함, 온화함, 부드러움, 정다움과 같은 인간 본성의 성정에 비유되는 감성이 상실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인간의 마음 가장 밑바닥에는 봄 같은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표현하는 데 서툰 까닭에 애써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치 따뜻함이 사라진 봄은 봄이기는 하나 봄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봄의 여정 앞에 일체 생명이 오롯이 나에게서 시작하여 나로 끝나는 귀결점에서 만난 봄은 곧 시작이라는 겸손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봄은 곧 시(始)라는 의미와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의미가 곁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본성을 겸비한 봄만큼이나 새로움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온화한 봄의 본성을 몸 안에 기르는 것이 봄에 걸맞은 행보가 아니겠습니까? 밖으로나 안으로나 봄기운이 온몸에 퍼져 심신이 청명해지고 사지 백 체가 윤택해진다면 온 세상 만물이 또한, 봄처럼 화해 날 것이니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까? 봄을 찬양하며 춘삼월 호시절을 극찬하는 노래가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봄을 극찬하며 내면에 향기를 한 컷 담아낼 즈음 마침 길가 모퉁이에는 작년에도 피었던 야생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작년 이맘때쯤엔 꼭꼭 피었던 야생화이건만 열리기가 아직은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만 있을 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들의 세계에 무슨 병고(病苦)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이 밑도 끝도 없는 현상에 혀를 내두를 즈음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릴 미물들의 노랫소리도 우리 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듯합니다. 아니, 꼭 봄이 아니더라도 계절의 때마다 날아다니던 메뚜기, 잠자리, 매미와 같은 미물들을 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벌들이 집단으로 사라지고 마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미 생명이 살 수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다는 논리조차도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믿음이 상실된 세계에 사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자연 생명은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지혜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며 위기에 처했을 때 나름의 해결방법을 공유하여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협력조차도 무색하게 할 만큼 큰 위기가 도래하였거나 봄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약동하는 기운마저 사라져버렸다면 생명 전체가 죽임에 이르렀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요. 약동하는 봄이기 전에 사멸하는 봄이요, 생명이 도탄에 빠진 봄인 것은 아닌지. 이런저런 상념을 쫓다 문득 필자를 부르는 봄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반문합니다. “봄아! 너의 그 생기발랄한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겠니.” 이 말을 들은 봄은 “나는 어김없이 논두렁이며 시금치 밭고랑 너머에 항상 와 있었습니다. 이를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느낄 수 있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만나기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일갈합니다. 

고요 속에서 넓어지는 시야, 고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는 이 말에 문득 ‘정수유심(靜水流深) 심수무성(深水無聲)’ 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 속 깊은 말에 봄은 이미 고요 속에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이미 우리 우리의 곁에 와 있었을 봄, 그 다정한 햇빛과 온화함으로 가득한 넉넉함을 우리 스스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봄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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