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유행을 넘어 한국의 기준이 세계의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 한글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언어의 편리성뿐만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글씨로 손꼽히는 한글. 한글 조형미를 불어넣은 한글 서예의 대가가 바로 밀물 최민열 향우(74. 읍 섬호마을 출신)다. 삐죽삐죽 솟은 산처럼, 너울너울 흐르는 물처럼 한글의 다양한 모습을 작품세계에 담아낸 그가 다섯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이번 전시는 귀향을 앞둔 그가 서울생활을 마무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18일 인사동 작업실에서 최민열 향우를 만났다.

청년시절부터 고서적 수집

인사동 건국빌딩 건국관 302호. 진한 묵향이 흐르는 이 곳은 최민열 향우가 2년째 사용하는 작업실이다. 전시를 준비 중인 작품이 창가 따뜻한 햇살아래 바스락 바스락 모여 있고 작업실 중앙엔 널찍한 작업대가 놓여있다. 벽면엔 그가 평생 수집한 조선시대 문인화와 서예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8세기 선비들의 작품이다. 작품을 전시해 놓은 이유는 옛 선비들의 마음으로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서예는 선비들의 삶이었다. 어떤 환경에서 글쓰기가 진행되었는지 그 때 그들이 즐겼던 그림, 글, 서책과 문방사우들을 가까이 두고 있다.”

이 방에 있는 작품들은 그가 일생동안 수집한 작품들이다. 어떻게 고서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50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십대에 친구들과 진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진도에서 소치 허련 선생의 ‘운림산방’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충격을 받았다. 고향에서는 이런 공간을 본 적이 없었거든. ‘이렇게 옛사람들의 작품을 모아서 보존하고 그런 공간을 고향에 만든다면 누군가 그걸 보러 올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최 향우의 고서적 수집이 시작됐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집집마다 보관하던 헌책과 그림들이 서울 황학동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던 시기였다.

고서적 수집하며 안목도 길러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어요. 말만 잘 하면 그냥 얻어오는 경우도 있었죠. 그렇게 사온 서적을 분류하고 정리하다 보니 눈이 트이고 안목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렇게 최 향우가 50년간 수집한 서적과 그림이 1500여점이 넘는다. 귀한 그림과 서적도 많다. 특히 그를 한글서예가로 이끌어 준 서적이 바로 조선시대 궁에서 일한 ‘서사상궁’이 작성한 ‘내서(內書)’다. 궁중에는 임금의 명령이나 편지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서사상궁’이 있었는데 이들에 의해 한글 서체가 체계화되고 아름답고 쓰기 편한 필사체가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궁체’다. 단아한 궁체는 글을 쓰는 상궁에 따라 조금씩 달라 한글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내가 갖고 있는 내서가 3권 있는데 한글박물관에서 꽤 큰 금액에 구입의사를 물어왔었다. 그런데 나중에 고향에 전시장을 만들면 전시하고 싶어서 개인소장 하고 있다.”

초정 권창윤 선생께 사사

글과 그림을 보며 안목을 키워온 최 향우는 본격적으로 서예 공부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예가인 초정 권창윤 선생에게 사사 받았다. 고서적 수집가에서 서예가 밀물 최민열로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이다. 밀물 선생의 가장 큰 업적은 궁체 연구에 매진하다가 추사 김정희의 한글서체를 연구해 서단에 처음 발표한 것이다.

한글 서예를 처음 시작한 그를 두고 현대 ‘캘리그래피’의 선구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서예가로 이름이 높아지자 대학에서 강의요청이 들어왔다. 대전대, 원광대, 단국대, 경기대, 경희대 등 전국 곳곳을 누비며 강의했다.

“지금은 다 정리하고 경희대에만 출강한다. 제가 강의한 학생들이 이제는 함께 작품 활동을 하는 서예가로 성장했다. 전국 어디나 강의를 다녔기 때문에 어딜 가나 제자들이 있어 그들이 큰 재산이다”

‘장지(壯紙)’에 쓴 작품 전시

오는 3월 31일부터 4월 6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될 밀물 선생의 다섯 번째 개인전에는 1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특히 3층에는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 ‘장지(壯紙)’에 쓴 작품만 전시할 계획이다. 고서적을 수집하며 종이도 연구한 밀물 선생은 “화선지는 몇 십년만 지나면 부식된다. 하지만 옛날 닥나무를 갈아서 만든 한지, 그 중 장지(壯紙)는 수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장지는 지금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옛날에 만들었던 종이를 구입해서 사용하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장지를 이용한 작품만을 별도 공간을 만들어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그가 서울에서 하는 마지막 전시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남해읍에 작업실을 임대해 많은 작품을 이미 그곳으로 옮겨 놓았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더 늦기 전에 시행했다. 가르치던 제자들도 이제는 혼자 정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고 개인적으로는 넓은 작업실에서 대작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컸다. 고향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더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했다.

밀물 선생은 그의 작품과 수집한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곳에서 서예아카데미도 개설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강의도 열고 상설 전시도 진행한다면 청년시절 그가 꿈꿨던 ‘운림산방’을 남해에서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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