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영 교수의 청주교육대학교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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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육대학교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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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영 도쿄대 교육학박사(1995년 7월), 장녀 정수연 도쿄대 이학박사(2011년 3월), 장남 정수완 성균관대 공학박사(2022년 2월). 일가 삼박사의 정규영(58년생) 교수 가족을 취재해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정규영 교수(청주교육대학교 교육학과)를 만났다.

▲청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1958년 2월 서면 정포리 우물마을에서 출생했다. 남해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진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중등교원으로 근무하다가 1988년 3월 도일,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1996년 3월 1일 청주교대 교수로 채용되었다. 이후 초등교육연구소장, 학생처장, 학보사주간, 기숙사감, 교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청주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수로서 연구 분야를 상세히 설명해 달라.
“전공은 교육사학이며 현재 학부에서는 ‘교육철학 및 교육사’와 ‘현대사상과 교육’을, 교육대학원에서는 ‘현대철학과 교육’과 ‘교육과 고전’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도쿄대 대학원 재학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전 일본의 학술 연구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던 현상에 관심을 가졌고, 학위 논문은 경성제국대학 일본인 교수들의 학술연구활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경성제국대학은 일본이 ‘조선’에 세운 유일한 관립대학인데, 설립 주체인 조선총독부는 대학이 식민지민의 고등교육의 장이 되기보다는 식민지 연구의 중심이기를 원했다. 
실제로 동교의 일본인 교수들은 상당히 뛰어난 학자들이었는데 그들의 학술연구는 대부분 식민지통치에 기여하는 것들이었다. 대학 제도에 일말의 존경심을 품고 있던 나로서는, 경성제대의 일본인 교수들이 식민지통치와 대외전쟁 수행에 기꺼이 협력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학술보국’ 즉 학술의 정치적 편향이 경성제국대학만의 일이 아니었다. 동서고금의 고등 학술이 실은 그런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문과 권력이 내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밝힌 것이 철학자 미셸 푸코였다. 10년 전부터 나는 푸코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데, 그 연장에서 최근에는 자기배려, 자기수양, 생존의 미학과 같은 개념에 이르렀다.”

▲서울대 사범대 진학과 교수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를 지망한 것은 나의 개인 희망이라기보다는 주로 주변 어른들의 의향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본래 문학 취향이라서 영문학과나 국문학과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당시 내게 자신감과 주관적 의지가 모자랐던 것 같다. 
교수라는 직업의 선택에서도 우연이 많이 작용했다. 부산에서 고교 교사를 하다가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지만, 일본 유학을 시작할 무렵에는 고교 교사 노릇을 더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출하여 고3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려고 하니 정말 힘들었다. 사적인 시간을 전부 교재 연구에 바쳐야만 겨우 창피를 면할 수 있었다. 당시 우연히 구해 본 일본의 학습 참고서가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고, 그것이 일본어 독학의 계기가 되었고 또 경험 삼아 응시한 일본 정부 장학생 선발시험에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1988년 3월 부산시 교육청으로부터 연구 휴직 허가를 얻어 도쿄대학 대학원에 유학생으로 등록했다. 일본 유학 기간 중에도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당시는 ‘박사실업자’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때다. 한국인 유학생으로서의 자존심과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봐야지! 하는 마음이 학위논문 제출까지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많은 우연들의 연속이다. 교수 생활이 올해 봄으로 만 26년이 되지만, 6년간의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교사 시절이 오히려 더 재미있었고 그립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교교육에 대하여 가져야 할 기본 인식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학부모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녀의 학교교육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자녀의 권리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많은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자립적인 인격으로 성장하는 데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주체적인 자립 능력,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나갈 의지와 힘, 그런 것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부모가 된다는 것’,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 이런 것이 본래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그걸 위해서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다루는 논문을 써 볼까 궁리 중이다. 내게도 성인이 된 자식이 셋이나 있지만, 나 자신이 부모라는 존재로서 제대로 살아왔는지, 또 지금도 그에 맞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절로 자괴감이 든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동시에 매우 힘든 일이다. 애를 한 명이라도 낳으면 부모가 되지만, 실제로 부모 되기, 부모로 살기는 그 순간부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이어지며, 심지어 사후도 영속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교교육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좀 관심을 덜 가지고, 덜 개입하면서 반면 자녀에게 더 많은 권리와 자유를 허용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여 절약된 시간과 에너지를 부모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도야를 위해, 자기 자신의 교육을 위해 썼으면 좋겠다. 늘 자기 자신을 돌보면서 자기를 채우는 노력을 하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 충실한 부모는 그 자체로 자녀에게는 모범이 되지 않을까? 공부해라, 학원가라, 시험 잘 봐라 하고 노심초사하며 자녀를 다그치지 않아도, 자기돌봄과 자기도야에 충실한 부모라면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그 자체로 자녀에게 좋은 교육 효과를 발하지 않을까 한다.”

▲남해는 교육열이 높은 고장이다. 이런 남해의 발전을 위해 교육(산업)에 어떤 투자를 해야 할까?
“한국의 교육열이 세계에서도 높은 편인데, 한국 내에서는 또 남해의 교육열이 높은 것 같다. 그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남해의 수려한 풍광과 맑은 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아무튼 내 고향 남해가 지금보다 더 활기 있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역시 인구 감소가 제일 큰 문제인데 어떻게 하면 젊은 사람들이 많은 남해가 될 것인지,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기 좋은 고장으로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정말 중요한 과제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년퇴직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그 후의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어떤 일을 계기로, 10년 전에 나는 자기 자신을 ‘시한부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만약 나의 여명이 딱 1년 혹은 2년뿐이라면, 지금부터 무슨 일을 가장 먼저 할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이 세계적 대작가들의 작품과 위대한 철학자들의 저술을 읽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때부터 직업적 필요 이전에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서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지금 내 연구실 서가에는 위대한 문학과 철학의 작품들이 다수 꽂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현직 기간은 물론 정년퇴직 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서에 더 전념하고 싶다. 육안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그 날까지는 문학과 철학의 서책들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더 멀리 보고 싶다. 
올 정월에는 기네스 기록이 인정하는 세계 최장 소설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드디어 완독했다. 다행히도 그런 종류의 독서가 자신의 대학 강의에도 보탬이 된다. 이전은 직업적 필요에 끌린 독서였다면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서가 주가 된 듯하다. 그런 사적인 동기의 공부가 대학의 강의에도 플러스가 된다.”

▲가족관계는?
“서면 우물마을에서 부 정태홍(鄭台洪)과 모 박순이(朴順伊)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지금은 큰형 정규병 박사(고려대 의대 명예교수)와 막내인 내가 생존하고 있다. 아내 김지영과 사이에 1녀 2남을 두었다. 장녀 정수연은 현재 도쿄의 의료과학 계통의 회사에 중역으로 재직 중이며, 장남 정수완은 지난 12월 초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취업하였다. 이 인터뷰의 계기가 이번 2월 중순 장남의 공학박사 학위 취득이었다.  
11년 전 장녀가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을 때도 남해신문에 게재하라고 권하는 고향의 지인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동년 3월 11일 일본에서 ‘동일본대진재’가 발생하여 약 2만 명이 죽거나 행방불명되고 후쿠시마의 원자핵발전소가 파괴된 대참사의 와중에 내 딸의 학위취득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일은 온당하지 않게 생각되어 내가 신문 게재를 말렸다. 지난 달 16일 장남의 학위 취득 사실이 고향 친구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짤막한 단신으로 보도되는 것을 예상했는데 뜻밖에 이렇게 확대되어 동향 독자들께는 송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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