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 대부분은 하늘과 땅과 바다로부터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 받으면서 생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받는 것으로 보면 사시사철 변함없이 대지를 비추는 햇빛이 있고 물과 공기 그리고 산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생성케 하는 기체와 액체 그리고 입자의 역동성과 또 이것을 움직이게 하는 기(氣)와 정(精)의 작용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이 주는 혜택임을 고려한다면, 이처럼 무한한 에너지를 받는 데 대한 보은으로 우리도 어떤 식으로든 이에 알맞게 보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에너지의 전달방식이 대단히 자연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단 한 치라도 왜곡되거나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순연한 질서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의 법칙이 이럴 진데 그러면 우리도 자연의 이법에 맞는 방식으로 보답을 해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으로부터 얻는 방식이 자연스러움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로 이 자연스러움에 순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우리의 생활 방식은 자연스러움에 따르기보다 인위적인 방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기에 이를 용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으로부터 받으려면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주려면 받는 것 이상의 자연스러움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취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연스러움과 인위적인 것을 살피면 자연스러움은 진실이요, 인위는 방편입니다. 자연스러움은 있는 그대로, 솔직, 공명, 순수, 진실을 낳고, 인위적인 것은 가식, 임기응변, 거짓, 부자연스러움, 치우침 등을 낳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기도 하겠지만, 자연스러움의 입장에서 보면 인위적인 방식은 왠지 모를 어색함과 이질감만 수반할 따름입니다. 이런 점에서 누구나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쫓아 선택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보람과 의미에서 자연스러움이 깃든 삶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삶을 예찬하면서 얼마 전 자연스러움의 극치를 맛본 선행은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평소 친분 있는 분과의 모임을 마치고 늦게 귀가를 한 날이었습니다. 대문이 보이는 길을 따라, 가로등이 비추어지기는 하였지만 나뭇가지에 가린 탓에 평소에도 약간은 어두운 길목입니다. 

이미 이런 길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터여서 주변의 어두움도 아랑곳 않고 총총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즈음입니다. 길목 중간쯤에 이르러 문득 대문 쪽을 바라보니 문 가운데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둥근 형체의 물건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식별이 어려웠으나 간간이 가로 등 앞에서 흔들거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빛이, 대문을 비치는 사이 형체를 드러낸 그것은 다름 아닌 비닐 포대에 담긴 시금치였습니다. 아니 웬 시금치가 여기에 놓여있을까? 누군가 옮기고 가다가 떨어트린 것일까? 아니면 필자에게 전하려다 문이 닫혀 있어 대문에 기대어 놓고 간 것일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가 비닐 포대를 열어 시금치를 바라보니 겉잎을 깨끗이 손질하여 잘 다듬어진 채로 담겨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냥도 아니고 시금치를 깨끗이 정리하여 대문에 놓아둔 정성, 더구나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은 자체만으로도 자연스러움이 듬뿍 묻어나오는 행보였기에 정녕 고무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자는 아니 많은 시금치도 아니고 단 한 뭉치일 뿐인데 그리 감동까지 할 것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은 수량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대가 없이 진심을 전한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자연스러움이 극치에 이른 행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이를 통하여 얻게 된 교훈은 조건 없이 행한 순수성입니다. 

마치 자연 속의 모든 생명체가 이러한 형태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듯이 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행보야말로 인위적인 요건에 물들은 우리가 취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전혀 인위적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보, 일말의 욕망이나 이름조차 드러내지 않는 진심, 이것이 우리가 자연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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