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명함 하면 이름이나 주소, 연락처 등을 적은 종이를 말합니다. 이러한 명함은 자신을 알리는 수단으로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보 수단으로써 명함의 역할이 알리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당사자의 신념과 기개마저 파악할 특별함이 담겨있다면 명함 그 자체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비범함으로 널리 기억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 비범함이 깃든 명함 이야기를 새기게 된 날, 필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에 책을 보기 위해 서재에 이르렀습니다. 이날 따라 읽고자 하던 책이 쉬이 눈에 띄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마침 진열된 책 너머에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명함 한 통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약간 퇴색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명함이었는데, 이것이 어째서 여기에 떨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당장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단 명함에 적힌 분들이 누군지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거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가끔 아는 분의 이름이 보일 때면 그분과 교우를 생각하면서 회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명함 한 장 한 장의 이름을 꼼꼼히 살피며 인연을 생각할 즈음 그때 갑자기 눈에 띄는 명함 하나가 필자의 시선을 확 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에는 약력이나 소개 글은 물론이고 집이나 회사 주소도 없이 그냥 이름 석 자와 전화번호만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 참 보기 드문 명함이네! 누구한테 받은 거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명함을 준 당사자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명함에 이토록 시선이 간 것은 보통의 명함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약력이나 경력이 생략된 점이 그렇고, 또 하나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나열되어 보통의 명함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름만 있는 명함이야 얼마든지 있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 명함 하나에서 왠지 모를 위엄을 느꼈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텅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찬 무게감이 상상외의 큰 감동으로 가슴에 다가왔다고나 할까요. 이를 두고 혹자는 명함 하나에 무슨 위엄이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때의 위엄은 위력이 아닌 비고 고요함이 서려 있으면서도 그러한 경지에서 우러나온 충만감이었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 자신을 알릴 홍보 수단치고는 너무나 단출한 부분도 그렇고 오히려 이 단출함이 더 큰 충만으로 연결된 부분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명함을 이야기하니 문득 몇 년 전 청주 의암 손병희 선생 유허지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 중 명함을 본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그 명함에는 손병희라는 이름 석 자만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텅 빈 사각형에 단 석 자의 이름, 그 의미를 유추해보지 않더라도 비고 고요함 속에 스며있는 충만함이 필자의 가슴에 그토록 깊게 각인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복잡한 이력의 나열이 단 한 줄도 없었어도 이름 석 자만으로 많은 사람의 가슴에 여운을 남겼을 그 담대함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빈 듯하면서도 더 큰 충만감이 우리의 가슴에 다가오도록 도량을 넓혀야 한다는 것을 그 명함에서 배우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심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늘 무엇으로 가득 차야 하고 화려함이 있어야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만함이 주는 의미를 헤아리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에서 우리는 비워서 고요해져야 하는 것과 채워서 충만해지는 이 양자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각기 나름의 원칙과 기준이 있겠지만, 필자의 소견으로서는 비어 있음으로써 더욱 채울 수 있다는 우연과 필연의 법칙을 동시에 적응해 본다면 어떠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가난해진다거나 채우면 채울수록 욕망이 덧붙여진다는 것이 아니라, 이 양자를 하나의 작용으로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비고 고요함이 깃든 충만함이 나를 나답게 할 가장 의미 있는 명함이 되어 의식을 고조시킬 수 있다면 이 명함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나의 경서(經書)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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