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동북아시아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최상의 포식자였다. 호랑이는 야생의 동물뿐만 아니라 가축이나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유해 동물로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1000회에 가까운 호랑이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다. 대부분이 호랑이의 출현과 피해, 포획에 관한 것이지만 호랑이를 잡아 승진을 하거나, 가뭄이 들면 호랑이머리를 강물에 넣은 이야기도 있고, 호랑이를 잡는 특수부대 착호갑사(捉虎甲士)를 운영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인간사의 삼재를 호환, 흉년, 전염병이라 했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재해를 막아주고 병난, 질병, 기근의 고통에서 인간을 지켜주는 벽사의 영물로 생각을 했으니 쉽게 이해가 안 된다. 

호랑이의 우리말은 범이다. 한자표기는 범 호(虎)자를 쓴다. 범이 호랑이가 된 사연은 여러 이견이 있다. 범을 뜻하는 虎와 이리를 뜻하는 狼을 합쳐 ‘호랑’이라고 하였다는 설과 몽골어의 호랑이를 뜻하는 hol에 접미사 앙이가 붙어서 된 것이라는 설이다. 기록에 虎狼이란 한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호랑이는 한자 虎狼에 접미사 이가 붙은 것으로 해석된다고 홍윤표 교수는 말한다. 

그러나 호랑이 보다는 범이 우리 정서에 맞는가 보다. 관광공사에서 펴낸 홍보자료에 판소리 수궁가의 ‘범 내려온다’를 ‘호랑이 내려온다’고 하면 어쩐지 운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 호랑이는 일제 강점기에 계획적인 포획으로 멸종되었으며 동물원에서 사육하던 호랑이마저도 얼마동안은 볼 수기 없었다. 그 후 88올림픽을 계기로 미국의 동물원에 살던 호랑이 5마리를 기증받았다. 

그중에서 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와 호순이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 후손들이 전국의 동물원에 있다고 한다.

고조선 건국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환웅천왕을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바라니 쑥과 마늘을 주어 동굴 속에서 100일을 살게 하자 곰은 참고 견디어 여자가 되고,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사람이 못된 호랑이는 용이 못된 이무기처럼 사람을 해치는 일을 빈번하게 일으키니 사람들과 호랑이의 관계는 멀리 할 수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호랑이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산신령이나 산군(山君)으로 모시게 되고, 호랑이를 그려 호환을 막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친근한 호작도(虎鵲圖)와 은혜 갚은 호랑이 설화도 만들었다.

호랑이의 특징은 힘이 세고 용맹하다. 성질이 급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여 토끼나 여우같은 작은 동물들에게 이용을 당하는 약간은 어리숙한 동물이다. 부지런히 풀을 뜯는 초식 동물과는 달리 게으른 호랑이는 집단생활을 하지 않아 먹이를 잡을 때는 숨어서 기다리다 먹잇감이 다가오면 덮친다. 별로 본받을 게 없는 동물이지만 자연계를 지배하는 기운과 용맹성은 받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인가 보다. 

올해는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라서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한다. 흑호와 백호는 음양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이지만 실제 자연계에서는 근친교배에서 나오는 돌연변이종으로 열성인자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생존 확률이 낮아 보기가 어려운 동물이다. 

일부 지역에 흑호나 백호가 생존하고 있지만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위적 교배로 태어난 흑호나 백호는 건강하지 못해 도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니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면 호랑이 전설을 가장 먼저 듣고 가장 오래 동안 기억한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로 시작하는 은혜 갚은 호랑이 이야기는 나무꾼이 호랑이를 구해주자 호랑이가 먹을 것과 나무를 가져오고, 임금의 딸을 호랑이가 업고와 신부로 맞이하게 되었다. 나라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골칫거리였는데, 호랑이가 그 나무꾼에게 자기를 쏘라고 해서 나무꾼이 호랑이를 쏘아 잡고 그 공으로 상금과 벼슬을 얻어 잘 살았다고 한다. 비슷한 전설은 곳곳에 남아 있고 고현면 선원 마을에도 있다.

옛말에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고 구름은 용을 따른다고 할 만큼 영물인 호랑이해를 맞았다. 질병을 막아주고 신령하고 용맹한 기운을 받아 코로나19로 어려운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아무리 기운이 충만한 해라고 해도 그 기운을 받아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기운은 시절의 흐름에 파묻혀 지나가기 마련이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어려운 때에 정신을 가다듬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진 자루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정리하지 않으면 넘쳐 새로운 것을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호랑이를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여우처럼 호가호위(狐徦虎威) 하지 말고, 가혹한 정치는 호환보다 무섭다는 가정어맹호(苛政於猛虎)라는 공자의 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검은 호랑이나 흰 호랑이나 가죽만 다를 뿐 속은 같은 호랑이인 것처럼 가죽의 속을 들여다 몰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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