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오른쪽 엄지손가락 마디가 아프다. 만년필로 글을 쓰다 보니 생긴 통증이다. 이 통증을 없애느라 설거지도 멈추고 글쓰기도 피하고 찜질도 하지만 쉽게 낫지 않는다. 이유는 딱 한 가지, 늙어 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인생은 60부터’라며, 이때부터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지고 몸이 약해지면 삶이 확실히 고단해진다. 힘이 빠지고 여기저기 아프면 자신감이 줄어들고 걱정이 많아지면서 불안과 허무와 외로움이 밀물처럼 올라온다.

나는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그 점에 늘 감사한다. 하지만 나도 내 나이대의 사람들과 똑같은 후회와 슬픔을 맛보고 있다.

만 69세. 우리 나이로 칠십이 되고 보니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걷고 있는 초라한 노인이 보인다. 

아무리 ‘나는 아니다.’라고 발버둥 쳐도 세상은 눈길을 돌리고 잊을 준비를 한다.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너그러운 이해를 바라면서 마음속 생각을 말하자면 ‘내가 이렇게 힘들면 다른 사람은 얼마나 더 힘들까.’이다. 물론 ‘나는 괜찮아. 이대로가 좋아.’, ‘나는 이제야말로 사는 것 같아. 얼마나 좋은지 몰라.’ 하며 일상을 즐겁게 누리는 척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은 세월이 던진 돌덩이를 가슴에 안고 인생의 황혼 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나는 요즘 좋은 생각 한 가지를 찾아냈다. 그것은 ‘조금, 아주 조금씩’이다. 

바쁘게 달려온 욕망의 속도를 늦추고 단단히 굳어 있는 내 생각과 습관의 어느 부분들을 조금, 아주 조금씩 바꾸어 보는 것이다.

나이가 주는 낭패감을 결심이나 의지로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만약 하루에 예전보다 열 걸음을 더 걷는다면, 책을 한 쪽이라도 다시 읽는다면 어떨까. 

가족과 대화를 5분이라도 더 하고,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듣는다면 어떨까. 글 한 줄이라도 써 보고, 작은 화분 하나라도 방에 들이고, 자기 밥그릇이라도 씻고, 식사를 천천히 하고, 물을 더 마시고, TV 시청을 줄이고, 이웃에게 따뜻한 눈빛을 건네고, 분리배출을 꼼꼼히 하고, 옷을 옷걸이에 걸고, 칫솔질을 조금 오래 하면 어떨까.

집을 고치거나 새로운 일거리를 찾고, 모임에 등록하고,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장 평범한 어떤 조금의 성실을 내 일상에 살짝 올려놓자는 것이다.

작고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적응하기 쉽다. 조금, 아주 조금씩 노력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변해 있는 자신을 보고는 스스로 놀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어 가는 것이고 과일은 익을 때 가장 많이 변한다. 맛과 색, 단단함과 연해짐, 씨앗 등 모든 것이 확실해지면서 진정한 자기가 된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다 보면 마지막 고민 몇 가지가 글이나 책을 확 바꾼다. 그 사소한 점 하나, 글자 하나, 그 짧은 한 문장이 독자에게 기쁨을 주고 책을 명품으로 만든다. 작은 것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일과 삶의 핵심을 통과한 사람이다.

나는 이 ‘조금, 아주 조금씩’을 실천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눕기까지 나의 조금은 얼마든지 있다. 짬짬이 책 읽기, 글 한 줄 쓰기, 청소하기, 화분 가꾸기, 운전할 때 보행자를 존중하기,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기 등.

이 조금이 계속되면 나의 인생도 봄처럼 다시 꽃 필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죽음의 두려움과 삶의 허무도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예기치 않은 평화와 자유가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인생은 끝까지 신비와 역설 속에 있으니까.

내가 삶을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늙음이라는 내리막길을 달려가면서도 삶의 신비에 눈길을 주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앞서 말한 내 오른쪽 엄지손가락 마디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우선 사용을 줄이고, 사용하더라도 조심조심 부드럽게, 조금만 쓴다. 이러한 조심의 노력이 없었다면 통증은 더 심해졌을 테고 약과 병원 치료에 의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몸보다 여리고, 작고, 부드러운 것을 더 좋아한다. 

내 마음에 닿는 어느 한 부분을 잠시라도 살피고 어루만지면 그것은 보답하듯이 새 기쁨을 만들어 나에게 은밀히 내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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