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교과40% 대안교과60%가 반영된 보물섬 고교의 시간표를 보여주는 백명기 교장
일반교과40% 대안교과60%가 반영된 보물섬 고교의 시간표를 보여주는 백명기 교장

밤섬. 창선면 율도마을에 알밤같은 아이들 15명이 2021년 3월 처음으로 당도했다. 공립형 대안학교의 산통을 겪으면서 태어난 ‘보물섬 고등학교’의 첫 신입생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소통해 온 평교사 출신으로 첫 공모제 교장으로 선택받은 백명기 초대교장. 그를 만나 우리 모두 있었을 ‘그 시절 그때’를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편집자 주>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 -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민간위탁형 공립대안학교인 보물섬 고교의 출범에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곧 개교 1년이 다가온다. 그사이 변화가 좀 있었나
= 대안학교에 대한 오해와 의구심이 컸던 주민들께서는 개교 첫 주 아이들을 보는 순간부터 반겨주시고 너무 좋아하셨다. 물론 그 밑바탕엔 ‘얼마나 잘하나, 계속 잘하나 지켜본다’라는 마음은 있을 수 있겠으나(웃음) 다행히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15명의 아이들 또한 바다와 섬이 보이는 좋은 자연환경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어르신들의 정을 느끼며 지낸다. 지난 한 해는 학생과 교사 모두가 성장하고 그러면서 더 삶이 깊어지는 한 해였다. 학교가 추구했던 학생들의 자율성 보장과 최대한의 기회 제공, 하고 싶은 것을 펼칠 수 있도록 한 시도도 좋았다. 다만 학생 수 자체가 적다보니 감정이 항상 드러나 있는 상황의 불편이나 아이들 스스로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약간의 불안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있었다. 

▲환경 중심의 대안학교라고 들었다. 교육 철학에 대해 설명해 달라
= 우리 학교를 표현하는 핵심 키워드를 2개 꼽자면 ‘미래’ 그리고 ‘환경’이다. 우리가 교육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한국 교육의 방향이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 대안이라는 것 말 속에는 지금 당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울지언정 먼 훗날 언젠가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하나의 제시일 수 있다는 게 포함돼 있다. 환경 또한 마찬가지다. 지구공동체적 삶 속에서 환경을 고민하고 고민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몸소 실천하는 곳인 셈이다. (수업 시간표를 보여주며) 40%의 일반 교과 외에 60%는 대안 교과 수업이다. 삶과 철학, 연극의 이해, 독서, 몸짓과 예술 수업 외에도 환경, 생태농업, 공정여행 같은 교과가 있다. 또 학생들이 가장 성장하는 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 or Interesting)라는 개인프로젝트 수업이 있다. 학생이 직접 흥미 있는 주제를 기획하고 탐색, 진행하고 평가한다. 

학생들이 가장 성장하는 ‘개인프로젝트 수업’인 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 or Interesting)를 공유하고 발표하는 모습
학생들이 가장 성장하는 ‘개인프로젝트 수업’인 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 or Interesting)를 공유하고 발표하는 모습

▲전국적으로 대안학교가 점차 느는 추세라고 들었다. 일반 인문계 고교와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
= 대안학교의 컨셉 또한 다양하고 변화해왔다. 예를 들면 초창기는 소위 말하는 문제아, 부적응자를 모아 치유시키는 병원개념, 치유개념의 대안학교가 많았다. 초기 출범이 이렇다 보니까 일반적인 인식이나 고정관념으로 늘 따라오는 단어가 부정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갈수록 생명사랑과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관점의 생태학교라든지 공립형 대안학교 등 결이 달라지고 있다. 일반 인문계고교와의 가장 큰 차이는 입시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핵심이다. 입시를 지우고 나면 모든 면에서 본질에 다가서게 되고 더 자유로워진다. 교과과정도 융통성 있게 바꿀 수 있고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 아이들을 사지에 몰아가는 것의 수단으로 ‘입시’가 변질되는 것에 대한 반성이 있다. 살아남는 방법, 경쟁에서 버티는 방법으로 내모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학생들이 마음껏 자기 역량을 펼치는 곳으로 대안학교가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22년도 신입생 모집은 마무리되었나
= 그렇다. 갓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남해가 좋다는 입소문이 났는지 경쟁률도 있었다. 15명 정원 다 모집이 끝나 3월 1일 개교에는 총 30명이 생활하게 된다. 입시를 지웠다고 해서 대학을 가지 않는 게 아니다. 대학으로 가는 여러 길은 있고, 중요한 것은 학생 개개인이 이곳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게 하는 힘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다. ‘여행하듯 산다’고 생각하면 삶의 모든 것을 다 즐길 수 있지 않나. 여행하다가 생기는 문제점마저도 모험요소가 되는 것처럼 목적지를 딱 정하는 게 아니라 삶의 과정 모두를 즐기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저는 교육이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세대 간의 소통, 살아가는 방식의 소통인 셈이다. 하나의 답안지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러이러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요하는 그 자체가 폭력이 아닐까. ‘미움받을 용기’를 품고서 점진적으로 인간을 배워가는 셈이다.

▲끝으로 자유로이 한 말씀
= 남해군민들께서 우리 학교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다. 우리가 여기 태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해군의 일원으로, 가족으로 반겨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크다. 개교식 당시 ‘남해가 자랑스러워할 학교가 되겠다’고 인사드렸는데, 그 마음 여전하다.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로 입소문이 나면 자연스럽게 남해의 좋은 보물이 하나 더 생기는 것 아닐까(웃음). 더 소통하며, 즐겁게 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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