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그림  정 길 호 (읍 현대마을)
글 / 그림 정 길 호
(읍 현대마을)

과거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전후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해 문맹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1962년 2월 10일 전남 여수 남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그날 지역민들은 물론 방송사, 신문기자들을 비롯해 많은 인파가 몰려 들었다. 

이날 회색 스웨터에 까만 낡은 바지를 입은 중년부인(박송이, 35세)이 노력상을 받았다. 그리고 6년만에 보석보다 값진 졸업장과 6년 개근상을 받는 단발머리 소년(정숙현 14세)가 울음을 터뜨렸다. 

사연은 이랬다.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수시에서 20리(약 8km) 떨어진 기장도에는 3가구에 겨우 20명 남짓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고기잡는 어선도 없고 단지 나룻배 한 척만 있을 뿐 교통수단이 열악한 환경이었다. 어머니는 딸이 8세가 되자 몸이 아픈 남편에게 육지에서 딸을 공부시키자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남편은 여자 아이가 공부해서 뭐하냐 하면서 반대했다. 당시 그 섬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만약 학교에 들어가도 20리 뱃길을 어떻게 다닐 수가 있겠느냐며 거듭 반대했다. 어머니는 섬이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을 굽히지 않고 남편 몰래 딸을 육지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 당시 가정에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과 두 아이 등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다. 고기도 잡을 수가 없고 단지 육지에서  남의 소를 빌려다 땅을 갈아 채소와 약초, 나물 등을 키워 팔아서 민생고를 해결하는 처지였다. 어머니는 어두운 저녁에 몰래 배를 타고 노젓는 기술을 익혔다. 그로부터 6년 동안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20리 바닷길을 2시간 가량 노를 저어 딸을 등하교시켰다. 

또한 먹고 살기 위해 딸의 수업이 끝날 때를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노를 저어 집에 도착해 밭일을 하다가 저녁에 딸의 귀가를 위해 또 20리 바닷길을 오갔다. 하루에 왕복 40리 정도니 6년 동안 2만리를 왕복했던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러한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졌다. 그 시절 당대 최고신문사인 한국일보, 조선일보에 톱기사로 보도가 된 것이다. 5·16군사혁명 초기 육영수 여사는 신문을 읽고 편지 한 통을 썼다. 남편 박

정희 의장이 남부지방으로 시찰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 꼭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의장은 모녀를 찾아가 굳은 살 배긴 손을 잡아주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편지와 함께 하사금도 전달했다. 

얼마전 토요일 아침 KBS 시니어 토크쇼 ‘황금연못’에 딸(정숙현 74세)이 특별 출연했다. 나는 운좋게 TV스크린으로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그녀는 보통 키에 세련된 스타일로 등장해 20분 동안 60년 인생사를 들려 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증언했다. ‘노를 젓는 어머니의 배를 타고 6년 도안 학교를 다녔지만 어머니는 한번도 힘들고 고달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고 한다. 고생하시는 어머니 생각만 할 뿐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굽이굽이 살을 에이는 어머니의 뱃길따라 왜 오고 갔는지를 나는 모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사라호 태풍으로 산산조각이 난 배의 파편을 안고 통곡했던 어머니, 차가운 추위에 갈라진 손등으로 여자도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파도를 헤쳐나가던 어머니의 지극 정성, 오로지 나에게 사랑을 베푸신 어머니, 저 세상에서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바람불고 비가오면 선생님이 우산을 들고 선착장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오늘은 파도가 위험하니 저희 집에서 하룻밤 지내시라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극구 사양하시고 노를 저어가다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떠밀려 그곳에서 밤을 지새고 뒷날 어선이 구출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나는 중ㆍ고등학교를 여수시에서 나와 서울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부터 서울시 한남직업전문학교 미용교사로 근무했습니다. 현재는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날 TV 진행자인 김홍성, 가애란 씨께서 혹시 영화 나온 것을 아냐느라고 물었고 그녀는 잘 모른다 하였다. 스크린으로 보여 주니 그녀는 ‘오늘 정말 이 자리에 나오길 잘했다’면서 가수 이미자가 부른 ‘꽃피는 여수바다’ 노래를 한곡 부탁하고는 “이 노래는 저희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좋아하셨던 노래입니다. 1절만 부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음악이 나오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미자 가수처럼 애절하고 구성지게 잘 불렀다. 수준급 실력이었다. 

가사를 잠시 소개한다. 

(1) 꽃피는 아침이나 물새 우는 저녁이나/ 나룻배에 나를 태워 글공부시키고져 
어기여차 어기여차 / 외딴 섬에 살아도 여수바다 푸른 물에/ 노젓는 어머니. 
(2) 글 배워 누구 주랴 / 아는 것이 힘이란 / 어머니는 못배워도 딸하나 훌륭하게
어기여차 어기여차 / 바람이 불어도 육년이란 그 세월에/ 모정 뱃길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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