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로운 마음을 다진다는 의미에서 마음 나누기 주제를 ‘아이의 마음을 논하다’로 정하여 보았습니다. 아이의 마음,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입니다. 아이의 마음, 하면 떠오르는 것이 순수함, 때 묻지 않음, 있는 그대로의 진실, 욕망이나 가식 없음 등입니다. 이러한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거룩했으면 심지어는 성인(聖人)조차도 아이 마음으로 돌아가라고까지 하였겠습니까? 

아이 마음은 인간 본연의 마음을 대변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점에서 비록 시간이 흘렀어도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 할 마음이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옮겨갈지라도 아이의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마음은 변치 않았고 유소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어도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그 마음입니다. 

그래서 임인년 올해를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는 소중한 아이 마음을 찾거나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순수와 진심이 번득이는 아이 마음은 여전히 잠재해 있지만, 날이 갈수록 아이다운 행보는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생존 원칙에만 머물러 마음이 갖는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왜 아이의 마음이 필요하며 또 그것이 일상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냐고 항변하기라도 할 때면 더욱 그러한 결기를 찾기가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가운데 “내가 정말 어른인가? 여전히 내가 어른인지 그 실체를 깨우치기도 전에 신체의 크기만으로 어른이 된 것은 아닌가? 또한, 이름으로 드러난 어른이 오히려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 어른의 요건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고 자문해봅니다. 

만약 이것이 시대의 풍습이라면 나로 지칭될 아이 마음의 선명한 특징이 인정 욕망, 출세 욕구를 뚫고 우뚝 서기가 더욱더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하여 인류의 성인이나 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밝힌 아이의 마음을 길러야 한다는 가르침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어른으로 상징될 욕망을 과하게 지니지 않고, 내 안에 아이의 마음이 얼마만큼 있는가를 살피며, 아이는 오롯이 생명과 무 생명, 의식과 무의식, 인위를 넘어 천연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들과 무한히 교감한다는 사실을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으로 교감한다는 말은 생명의 물결에 순응한다는 차원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행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변 생명마저 사람의 마음 작용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에서 또 그러한 바탕이 아이의 마음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습니다. 

아이의 마음은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어루만져 주는 마음입니다.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지 않은 마음, 욕심과 욕망에 젖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습관된 마음으로 순수 영혼이 점점 오염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분이 오염되면 전체가 오염되듯이 마음 작용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이 마음을 갖추는 일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느 시기엔가는 아이 마음이 전체의식으로 공유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기를 기대하며 아이 마음에 동화될 즈음 필자도 어느덧 손녀를 안게 되었습니다. 아이 마음을 담아낼 어른다움이 더욱 가시화되는 순간입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아이 마음을 직접 대하니 그 기운으로 세상은 더욱 밝고 아름답게 펼쳐지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미소에 필자의 마음 역시 동화되어 갔습니다. 아니 완연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의 숨결과 하나가 되었고 그의 세포와 기운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음이 하나로 통한 절묘한 순간, 그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을 언제 어디서 느껴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따뜻함과 그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과 어우러질 때면 아무리 내 안에 아이의 마음이 잠재되어 있다고 하여도 손녀의 순수가 깃든 마음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그 감동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기쁨이 절정에 이르게 된 그 순간이 필자로서는 그야말로 최고의 명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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