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순간입니다. 이때가 되면 늘 그렇듯이 지난해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새해엔 더욱더 알차게 보내자며 다짐을 합니다. 이러한 바램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몰, 일출에 기대어 마음을 새롭게 담으려고 산으로 바다로 떠나기도 합니다. 해가 지고 뜨는 현상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지나는 해와 떠오르는 해의 의미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느껴질 시기입니다. 이를 맞이하는 시간 또한 하루 상관이지만, 마음으로 느껴질 온도의 차는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할 계기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마음에 새겨진 지난 경험과 새날과 새로움이란 의미를 다질 순간을 딱히 밖과 안으로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행보를 바깥에 기대어 해소하려는 듯한 심리에 치중한다면 그것이 과연 바른 것인가는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바깥의 경지가 넓고 깊다고 하여도 심신을 달랠 문제나 심신을 새롭게 다질 의지는 아무래도 마음의 안쪽에서 일어나는 어떤 신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하게 지혜를 모은다면 마음을 어떻게 얼마만큼 집중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집중시키고 정결하게 한다는 점에서 수심정기(守心正氣-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함)야말로 마음에 어떤 감정상의 혼란이 와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성품을 온전히 지켜낼 내면의 소중한 가치입니다. 

필자가 수심정기를 예찬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할 수 있도록 의식을 새롭게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듣고 혹자는 “수심정기를 하려면 몇 시간씩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고 이때 수반되는 다리 아픔이라든지 저림과 같은 현상을 어떻게 참고 이겨내느냐”고 묻습니다. 이를 때 흔히 하는 말이“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해가면서 다리 아프게 앉아 있어야 하나,” “마음을 살피는 것을 알기는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어서” “나중에 형편 풀리면 그때 가서 하지 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차원에서 또 한 차원으로 변모하기까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큰 노력과 더 많은 아픔을 견뎌내고 이겨내야 성취되는 것이라면 세월의 흐름 또한 마냥 가고 오는 것을 바라보아서는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제까지로 연결된 수많은 사람의 열정과 노력이 있어서 오늘이 맺어지듯이 해가 가고 오는 현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담아낼 마음 역시 청렴하고 순수해야 비로소 새로운 해를 떠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구적 노력과 함께 새로움을 열 가치에서 하늘에서 땅에 이르기까지, 대지의 이쪽에서부터 저쪽까지, 먼 과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최초 생명의 시원으로부터 현재의 생명까지, 전체이면서 부분이자 세계의 중심이면서 그 중심에 이를 나를 명확히 하는 절차까지 이 와중에 펼쳐질 수심정기야말로 나와 세상을 하나로 이끌 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운이 단 며칠 사이에서 그쳐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려됩니다. 이러한 방편에서 만약 지난해와 새해 사이에서 마음 쓰는 여하에 따라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농후해진다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수심정기로서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오늘을 벗 삼아 항상 지금, 이 순간에, 또 그러한 순간이 지나면 또 현재의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수심정기로서 마음을 다져 어느새 몸과 마음이 환한 경지에 올라 나의 기쁨이 너의 기쁨이요, 너의 기쁨이 또한 나의 기쁨이니 이로써 맛볼 새로움은 그 어느 순간에도 느껴보지 못한 감격이 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수심정기는 잡념 없이 나를 바라본다는 것, 나를 지켜낸다는 것, 나를 지켜 자신을 자신답게 할 구체적 행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보라면 어느 날이든, 어떤 감정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든지 새로움을 담아낼 여력은 충분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몰, 일출에 의미를 두기보다 내 마음 안에서는 어떤 해를 지게 하고 또 어떤 해를 떠오르게 해야 할지 살피는 것도 수심정기를 통하여 이룰 수 있는 교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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