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 평산리가 낳은 소설가 백시종의 새 장편소설 ‘황무지에서’가 출간되었다.

소설의 무대는 우리나라 의병 역사상 유일하게 큰 승리를 거둔 경기도 지평 일대. 한때 살인 호랑이를 잡기 위해 조정이 양성했던 공인 포수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던 곳이 지평이다.

그 중에서도 국가 최고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조철상의 선대부터 운영해 온 ‘지평한의원’은 인근지역까지 널리 알려진 명소다. 가업인 한의사를 포기하고 식물학자가 된 조수익이 일제 강점기와 6·25를 치른 한반도의 민둥산에 생애를 바쳐 산림녹화 사업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대의 아픔과 애환, 그리고 사랑이야기가 숨가쁘게 펼쳐진다.

전상기 문학평론가는 “씨줄과 날줄로 교직되는 ‘황무지에서’의 서사적 스케일과 의지는 외세에 시달리고 내부적인 알력과 갈등, 분열에 고통받아야 했던 한국사에 대한 안타까운 반성과 서늘한 통찰을 가져다준다. 더불어 작가는 허구적 장치를 뚫고 현실 속에 육박해 들어오는 숭고한 사랑을 제시한다. 한 집안의 영욕과 고난에 찬 간난신고의 굽이치는 길 위에 웅숭깊고 뭉근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감동의 책 읽기로 흠뻑 젖게 하는 것이 백시종의 장편소설 ‘황무지에서’의 미덕이다”라고 평했다.

반면 책 속의 작품해설을 맡은 이재복 한양대학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는 백시종의 ‘황무지에서’는 독특한 관점으로 우리의 역사를 영상화하고 있다며 우선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시공간부터 남다르다고 평했다. 소설에서의 시 공간은 이야기를 수렴하고 확장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닌 서사의 실질적인 토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소설 속 주무대인 지평한의원의 복원은 곧 역사의 복원을 의미한다. 밑동과 둥치가 훼손되어 버린 엄나무로 표상되는 조씨 가문의 비극적인 역사는 그대로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 다름 아니다. 이 상처를 풀어내고 해소하는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역사의 지평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논했다.

역사는 늘 여기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지극함으로 움직이고 또 변화해 왔다. 지평한의원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의식 역시 다르지 않다. 지평한의원의 역사가 곧 역사의 지평이 되고 또 그것이 서사의 지평이 되는 그런 세계에 대한 꿈을 비단 작가만의 바람이 아닌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백시종은 우리 문단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 작가인가. 문학평론가이며 시인인 중앙대 이승하 교수가 쓴 해설을 인용해 보자.

“소설가 백시종은 한국 문단의 아주 드문 귀재라고 할 수 있다. 스물두 살 때인 1966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에 가작을 했고 ‘현대문학’ 초대 추천을 받았다. 그해 전남일보 지령 5천호 기념 현상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스물세 살 때 동아일보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비둘기’와 ‘뚝주변’으로 동시 당선되었다.
한 사람이 세운 이 기록은 그 뒤로 깨지지 않고 있다. 옛말에 ‘소년 급제는 독이다’라는 것이 있다. 너무 이른 출세는 방해가 될 뿐 인생에 득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소설가 백시종은 달랐다. 이른바 ‘이순’을 넘기고 나서 소설집은 물론이고 장편소설 신작을 해마다 출간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려 14권에 이른다. 작년에 출간된 ‘여수의 눈물’도 소설가 백시종이 노익장을 발휘한 명작이지만, 올해 선보인 ‘황무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과 역사의 지평을 이룬 장편소설의 진수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황무지에서> 문예바다, 399쪽,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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