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시아버님께 받은 시금치와 마늘이 있습니다. 매년 조그마한 텃밭에 심어서 먹기도 하고 종자로 남겨두기도 합니다. 물론 시중에 색깔이나 맛이나 수량 면에서 상품성 좋은 종자가 넘치지만, 입맛 까다로운 시아버님께서 주신 한산도 마늘과 거제 시금치는 맛이 좋아 해마다 심고 가꿉니다. 언제부터 토종종자와 토종의 맛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릴적부터 농사짓는 친정어머니를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농사의 소중함, 옛것의 귀함이 몸에 익었나 봅니다. 덕분에 농민으로 살지 않으면서도 매해 심고 거두어 시아버님표 종자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토종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여성농민회의 주요한 식량주권사업 중의 하나로 토종종자 지키기 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단박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도 토종농사는 아녀도 식용꽃농사를 지으며 농민으로 살고 있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여성농민회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토종종자사업을 해왔고, 경상남도의 토종종자지원조례도 여성농민회의 활동결과이고, 전국 각 지역의 여성농민들이 토종농사를 짓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토종종자 사업의 핵심은 농민이 종자권을 갖는 것이라는 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그 옛날 추억어린 맛을 찾아 토종을 키워왔는데, 더 큰 의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종자시장은 몇몇의 다국적 회사가 특허권과 품종보호권을 독점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니 농민들이 그런 품종을 채종해서 판매하면 불법인 것으로 종자법이 제정되어 있다 하지요? 게다가 그런 종사를 수입하게 되면 비싼 로열티를 내게 되어 있어서, 지난 15년간 1,000억이 넘는 비용을 냈다고 하니 농민들의 생산비 부담이 점점 높아져 가는 것이겠지요.

무엇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더욱이 농민들의 손에 종자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거듭 듭니다. 요소수 대란으로 화물자동차 관계자들, 아니 소비자들까지 때아닌 난리를 겪고 있지만, 그것이 만약 종자였다면 갑자기 우리 식탁에서 거의 모든 농작물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해봅니다. 우리가 사먹는, 또는 키우는 농작물의 대부분은 채종이 되지 않거나 심더라도 기형과가 나옵니다. 고추, 가지, 상추, 시금치 등등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러니 채종 가능한 종자를 매년 심어서 어떤 상황에도 우리의 식량권이 보장되도록 민간차원에서나마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원대한 뜻을 가지고 시작한 토종종자 사업이지만 아직은 부족합니다. 이제 내년부터는 우리 지역의 토착유전자원을 발굴하고 이것을 보존하는 그런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그 첫 시작에 우리의 정성을 모은 작은 축제의 장을 마련했으니 군민 여러분께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 김한숙 남해군 여성농민회 토종종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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