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아일랜드의 국민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는 자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The Lake Isle of Innisfree>에서 섬에서 사는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 거기 외 엮어 진흙 바른 오막집 짓고 /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 / 벌들 잉잉대는 숲속에 홀로 살으리.

또 거기서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리 우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 한밤은 희미하게 빛나고, 대낮은 자줏빛으로 타오르며, /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 호숫가의 잔물결 소리 듣고 있느니, / 한길이나 잿빛 포도(鋪道)에 서 있으면 / 가슴 깊은 곳에서 그 소리 듣네.(정현종 옮김)

번잡한 도시 런던에 살던 그는 어느 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즈넉한 물소리에 시상이 떠올라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니스프리는 아일랜드 말로 ‘자유의 섬’이란 뜻인데, 자연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서정적인 언어로 수 놓여 있다.
예전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서 내 또래라면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듯하다. 그 시절 이 시를 읊조리며, 대체 이 호수 안 섬이 어떤 곳이기에 이런 아름다운 시를 일구었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시조에도 자연 속에 사는 즐거움과 여유를 녹여낸 작품이 있다. 남해에 유배를 와 <영유시(詠柚詩)> 20수 연작을 쓴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시조다.

소치도 #1-#2 / 유화 / 52X33cm
소치도 #1-#2 / 유화 / 52X33cm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두 작품은 많은 점에서 닮았다. ‘아홉 이랑’ 밭은 ‘재 너머 사래 긴 밭’과 겹쳐지고, ‘홍방울새’와 ‘귀뚜리’는 ‘노고지리’로 치환된다. 그리고 ‘벌들 잉잉거리는’ 소리는 밭을 가는 소의 워낭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조의 창작지가 남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장소가 어디가 되든 자유와 휴식으로 가득 찬 아담한 섬 한 자락에 누워 파도소리에 몸을 맡긴다면 세상에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밟아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또는 먼발치에서 바라본 소치도는 내게 ‘이니스프리’다. 거기는 등대가 있어 길 잃어 방황하는 사람들을 행복으로 안내할 것이고, 기러기가 둥지를 틀어 끼룩거리며 내 주변을 맴돌 것이다.

어찌 소치도만일까? 노도도 좋고, 호도나 조도면 어떻겠는가? 저들처럼 시인이 되어 ‘섬에서 부르는 노래’를 읊는다면 내 삶과 영혼은 안식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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