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내가 다니던 동국대학교는 서울 남산 중턱쯤에 자리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불상이 있는 정상까지 가려면 15분 정도 강행군을 해야 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숨을 헐떡이며 강의실을 찾았는데, 원래 대학은 이렇게 높은 곳에 있어야 제 격인 줄 알았다.

높은 게 자랑은 아니어서 다른 대학에 간 동창들이 놀리느라고 동국대 여학생들의 다리는 ‘무 다리’라 우겼다. 유심히 살펴보니 날씬한 여학생들도 많아 곧 낭설임을 알았다.

워낙 고지대에 있다 보니 학교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였다. 고층빌딩과 번잡한 자동차 물결에 휩쓸려 다닐 때는 서울의 경관이 멋진 줄 몰랐는데, 학교에서 본 서울은 제법 운치가 느껴졌다. 사물이란 조금은 멀찍이 떨어져 봐야 미감(美感)이 드러나는 법이다.

봉황산 나래숲공원에서 바라본 남해읍 / 색연필화
봉황산 나래숲공원에서 바라본 남해읍 / 색연필화

남해읍은 남해에서는 ‘미니 서울’이다. 1만여 명의 군민들이 옹기종기 살지만, 남해병원에서 실내체육관까지 쉬엄쉬엄 걸어도 20분이면 주파한다. 달마다 가게가 문을 열고 문을 닫고, 도로 공사가 끊일 날 없는 읍은 항상 분주하다.

늘 코앞에서 보기에 남해읍도 제법 볼 만한 입지를 갖춘 줄 알기 쉽지 않다. 산 위에 올랐을 때 비로소 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산을 하면서 봐도 좋겠지만, 탁 트인 언덕에 공원이 있으면 가볍게 산보도 하고 맑은 공기도 마시며 도시가 주는 그윽함을 맛볼 수 있다.

읍을 대표하는 공원하면 실내체육관 뒤에 있는 남산근린공원(그렇다. 남해에도 남산이 있다!)이지만, 내가 사는 집과는 거리가 멀어 행사 때가 아니면 잘 찾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정겨운 공원은 봉황산 아래 있는 ‘나래숲공원’이다.

학림사와 법흥사 사이에 있는데, 새로 난 소방도로에서 계단을 조금 오르면 바로 나온다. 5, 6년 전에 만들어진 걸로 기억한다. ‘나래숲공원’이 딱히 이곳만을 가리키는 것 같진 않지만, 사면이 바다라도 이 공원은 인가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꽤 높다.

새벽에 오르면 아직 해가 뜨기 전 옅은 안개 속 남해읍은 파스텔 톤 풍경화의 정감을 보여준다. 한낮 해가 쨍쨍할 때는 물기 하나 없는 고화질 영상을 연상시킨다. 한밤에 본 남해읍은 멀리 보이는 산이 어둠 속에 솟은 피라미드 같아 고대의 어느 역사 깊은 도시로 다가온다.

비가 오면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서 그려진 자욱한 비안개로 가득하다. 눈이 오면 ‘러브레터’의 설경을 떠올릴 만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폭설을 본 적은 없어 상상은 되지 않는다.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공원엘 잘 가지 못한다. 그래도 공원이 그 도시를 상징하는 줄은 안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 런던의 ‘하이드 파크’, 파리의 ‘튈르리 공원’처럼 뉴욕, 런던, 파리에 이런 공원이 없다면 얼마나 살풍경했을까?

사방이 산인데 무슨 공원이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산과 공원은 기능이 다르다. 남산공원이든 나래숲공원이든 남해 하면 떠오르는 공원이 생긴다면 새로운 명소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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