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및 경제 관련 앵커로 활동하면서 주식 전문가로 살아온 임경천 씨는 2010년 남해군 서면으로 귀촌해 유튜브로 주식 강의를 하면서 서면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의 집을 수리해주는 봉사를 해오고 있다.
주식 및 경제 관련 앵커로 활동하면서 주식 전문가로 살아온 임경천 씨는 2010년 남해군 서면으로 귀촌해 유튜브로 주식 강의를 하면서 서면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의 집을 수리해주는 봉사를 해오고 있다.
지난 6일, 제3호 집수리 봉사 현장의 모습으로 총 4톤의 쓰레기가 나왔다고 한다
지난 6일, 제3호 집수리 봉사 현장의 모습으로 총 4톤의 쓰레기가 나왔다고 한다

수백의 채널과 방송이 난무하지만 아직까지도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만큼 따뜻한 프로그램은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곰팡이가 독차지하고 있는 집을 고치지도 못하고 사는 이들, 낡아도 쉬이 바꾸기 어려운 게 집이다. 인생의 고개를 넘어본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집의 중요성을. 주거의 쾌적함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를. 나라님도 구제해주지 못한다는 ‘가난’을 오롯이 보여 주는듯한 습기 가득한 벽지, 구더기가 나오는 녹슨 냉장고. 이젠 이가 맞지 않는 가구 등. 삶이 바닥을 지나 지하로 향해있음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생존에만 골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주식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매집차트연구소’의 운영자인 임경천 주식전문가. 그는 2010년 남해로 귀촌했다. 여행으로 온 다랭이마을에서 지금의 딸을 얻게 된 기쁨으로 ‘남해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를 다짐했다는 그. 그를 만나 더불어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상남마을의 키다리 아저씨, 前 앵커 출신의 주식전문가 임경천
서면 상남마을. 복콩이라는 애칭이 새겨진 큰 표지석이 보인다. 
4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한 임경천 씨가 사는 이곳은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前 SBS CNBC ‘전문가 빅리그 앵커’, 한국경제 TV ‘한밤의 증시카페 앵커’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2010년 남해군으로 귀촌했다. 
시작은 남해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덜컥 딸 아이를 갖게 된 게 인연이 돼 서울 생활은 정리하고 본업인 ‘주식’ 전문 책을 집필키로 마음먹었다. 남해살이 11년차, 현재까지 총 8권의 주식 시리즈 ‘공부만이 살길이다’를 내고 최근엔 선한 나눔으로 ‘키다리 아저씨’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직접 포크레인을 운전할 정도로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임경천 씨는 유튜브로 주식 강의 방송을 하고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게 주업이지만 방송 외에도 바다가 보이는 ‘전시관 짓기’,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웃의 집 고쳐주기 봉사’ 등을 꾸준히 해오는 등 온종일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1만 구독자의 ‘매집차트연구소’ 좋은 일에 써달라며 성금 보내와
새벽 4시에 일어나 미국 주식시장부터 살핀다는 임경천 씨. 오후 3-4시까지 주식 정보를 갈무리하고 화, 목요일 저녁마다 유튜브로 주식 강연을 한다. 주식 소식뿐 아니라 짬짬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소식도 공유하고, 기역자 허리로 일군 우리네 어머니들이 키운 단호박을 제값에 받게 해주고자 지난 6월에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1억 5천만 원 상당을 판매키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유튜브 구독자들 사이에서 ‘좋은 일 하는 사람’으로 입소문이 나자 여러 구호 물품이 매일 당도한다. 또 십시일반 성금 또한 보내왔다. 임경천 씨는 “화장품부터 이불, 옷 등을 계속 제게 보내오니 어려운 사람, 필요한 사람을 찾아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지적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독거 노인, 행정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게 절실해 면사무소 담당자와 소통했고, 직접 곳곳을 다니기도 했다”며 “단순히 물품을 전해주는 것 말고 이분들의 생활이 이뤄지는 공간인 집을 고쳐주면 어떨까. 보내주신 성금도 낡은집 고치는 데 쓰고 집수리에 동참해줄 봉사자들 또한 유튜브로 모집하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집 고쳐주기 프로젝트’가 지난 6일, 제3호 집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 사는 남해, 나만 잘 살면 무슨 의미인가
남해로 여행 왔다가 만나게 된 복콩이(딸의 태명). 딸의 고향이 된 남해이자 이제는 가족들의 제2의 고향이 된 남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임경천 씨는 “아이 생긴 기념으로 스위트홈이 떠올랐고, 그게 시작점이 되어 남해군 자체에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하게 됐다. 반신불수인 분, 지적장애인인 분 등 우리 주변엔 말 못 한 채 그저 지옥 같은 삶을 견디고만 계신 분들이 많다. 청소하는 데만도 쓰레기양이 1톤을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토요일에 봉사하러 간 곳은 냉장고를 여니 구더기가 나오더라. 전국 각지에서 봉사 온 분들이 다들 경악했다. 그만큼 마음도 시렸다. 기초수급자로 행정망에 포함이 안 돼 있어 도움 자체를 못 받는 분도 많다. 갈수록 빈부격차는 커지고 인플레이션은 커져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11년 전 상남마을에 집을 짓던 임경천 씨에게 “여기는 태풍 와서 안 된다, 왜 서면에 짓느냐”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고 한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호수 같은 바다가 좋아 지금의 터에 자리를 잡았고, 그때부터 늘 한결같은 꿈을 꾸었단다. 그는 “이곳을 산토리니처럼 만들고 싶다. 코발트색 바다와 하얀 건물, 그것만 있는 산토리니에 몇백만 명이 몰려와서 바다를 보고 간다. 지금은 ‘볼 게 없다’는 이곳에 최초로 바다를 눈앞에 두고 관람할 수 있는 ‘전문 전시관’을 짓고 있다. 기초 뼈대를 많이 진행했다. 완성되면 서영기 도예가(경기대 예술대 교수)에게 기증받은 부드러운 달항아리 전시로 군민은 물론 남해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이 바다와 달같은 희망을 같이 선물하겠다”며 아름다운 꿈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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