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정신이면서 물질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한 대로 입자의 활동이 시작되니 정신이라 할 수 있고, 형성되는 것으로 보면 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느낌을 감지하여 구체적 활동을 시작하는 순간 그 잠재성은 동시성과 즉시성으로 현실에 뚜렷이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특히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생각이 가진 잠재성은 더욱 적극적으로 행위 모색에 긍정적 동기를 부여합니다. 

이를 보면 생각으로 짓는 행위는 시공간을 넘어, 오면 다시 가고, 가면 다시 오는 행보로써 삶을 이루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 깊이를 하늘에 이르게 하고 그 두텁기를 땅에 이르도록 진솔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에 이르려면 생각에 매몰되어 자신의 중심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며, 생각에 쫓겨 일체가 하나라는 의식을 망각하는 우를 범하여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을 어떻게 가지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전체 생명을 유, 무익하게 할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생각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웬 참견이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생각이 만 리 만사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점에서 생각과 대상과의 관계 설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생각과 생각, 생각과 대상이 일치하는 능동성은 대상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너머까지 바라보라는 속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생각이 지닌 묘미라면 날로 복잡해져 가는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이 생각을 어떻게 지닐 것이며 또 어떻게 투사하여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무렇지도 않게 먹은 생각 하나가 뭇 생명을 죽일 수도 있고, 무시, 비하, 절단, 죽음, 왜곡, 부정, 원망 등에 이르게도 할 수 있다면 이 생각처럼 무서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욕망 이전에 순수를, 허상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부정보다는 긍정을, 시끄러움보다는 조용함을 갖춘다는 것은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건전성을 확보하는 특별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생각의 성정에도 허(虛)와 실(實)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허하고 실 한지는 몸소 행하는 언어유희 속에서 목격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대화의 와중에 상대방을 향해 고집이 세다는 말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누구누구는 고집이 세어서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담 어린 하소연도 곁들이면서 말입니다. 고집이 세다는 것은 생각이 고착화 되었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경험으로는 틀림이 없다는 사고가 깊이 스며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신념에 관한 문제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는 점에서 좋은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이 특정 의견을 개진할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활 전반에서 나타나는 양상이라면 생각을 이루는 요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 빈틈없이 꽉 찬 상태에다 욕망이 가중되어 버렸다면 그러한 생각은 칠흑 같은 어두움에 젖어 들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남의 허물을 들추는 생각을 가지기 전에 그러한 생각이 떠오르는 자기 생각을 즉시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이럴 때 회자되는 말이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이 그렇게 한 데는 필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생각을 가지면 가질수록 당신의 마음과 몸이 더 상하고 만물 또한 그러한 생각에 상처받고 멍들어갈 뿐이다”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생각 입자의 잠재성은 한 생각이 이에 있어야 만 가지 일이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는 격언처럼 모든 작용이 한 곳에 집중되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생각의 한 부류인 사념(邪念)으로 말미암아 혼란스러운 일들을 종종 겪곤 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빌미가 되어 자신을 학대하거나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생각은 입자요, 입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끄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만상이 즐거운가 아니면 괴로운가는 오로지 생각에 달렸음을 다시 한번 유추해 봅니다. 

사념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것, 사념은 움직이고 변화는 세상의 온갖 형상들에 예속되어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당찬 의지입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여도 자신을 나타내는 길은 사념이 아니라 순수한 자각이요 순수한 의식인 것이 필연의 법칙입니다. 사념의 에너지, 그 진부한 파동에 휩싸인 채 종속된 삶을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때에 복잡한 사념을 한 생각으로 정리하여 심신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는 영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순수한 자각에 이르는 것, 이것이 사람의 근본 자리에 어우러지는 유일한 길이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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