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에서 살 때 책을 보거나 빌리려고 읍에 있는 두 도서관을 자주 다녔다. 아무래도 발길이 남해도서관으로 많이 향했다. 소장량도 많은 데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이 꽤 있어 참고하기에 좋았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가면 3층 열람실에 앉아 밤 10시까지 책을 보거나 글을 썼다. 하지만 나는 퇴계 선생처럼 공부벌레는 아니어서 두어 시간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셨다. 뇌 용량이 초과되어 머리도 띵하고, 책도 같은 줄에 머물며 맴돌았다.
그러면 밖으로 나와 봉천을 보며 담배를 피거나 잡념으로 에너지를 채웠다. 난간에 기대 흐르는 냇물을 들여다보노라면 송사리들이 헤엄을 치면서 저희들끼리 속닥거렸다. 수량이 부족하면 그런대로 비가 와 넘치면 또 그런대로 물고기들은 입과 귀를 맞댄 채 저희들의 세상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때 문득 『장자』의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장주(莊周)가 친구 혜시(惠施)와 함께 호수(濠水)의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다가 말다.
“물고기들이 참 징하게 노는군. 저게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겠지.”
그러자 ‘참견꾼’ 혜시가 맞받아쳤다.
“자네는 물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아는가?”
그 말에 질 장주가 아니었다.
“그대는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어찌 아는가?”
말싸움은 더 이어지지만 여기에서 ‘호량지변(濠梁之辯)’이란 말이 나왔다. 사물과 사고의 상대성을 인정하라는 뜻을 담았다.
물고기를 꼬나보던 나는 물론 장주의 깜냥이 못된다. 그래도 가끔 말 통하는 싸움꾼 혜시 같은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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