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취재요청으로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에 위치한 ㈜원시스템미트 문장문(53) 대표이사를 찾아갔다. 문 대표가 역까지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서글서글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믿음직한 첫만남이 인상적이었다. 
맨주먹으로 성공을 이룬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 대표는 삼동면 양화금 어촌마을 출신이다. 어부였던 아버지 고(故) 문점수씨와 어머니 김희분(현재 남해 거주)씨 슬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식품분야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어떤 업체를 운영하는지, 어떤 사업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면?
“(주)원시스템미트는 제주도 돈육과 국내산 한돈의 임가공사업을 한다. 가공품을 2차 육가공업체에 원료로 공급하고 있으며, 캐나다,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미국 등에서 2차 육가공 원료를 수입 유통하고 있다. 2차 육가공으로 햄소시지, 돈까스, 만두, 동그랑땡 등 냉동가공식품도 하고 있다. 주요 거래처는 동원(만두원료), 사조(햄소시지), 해피브릿지(국수나무 돈까스), 하늘푸드(육류냉동 제품), 조이쿡(돈까스), 연수레(만두) 등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걸어온 길과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인지 알려달라.
“사춘기였던 고1 때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하게 했다. 대전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진학하지 못했다. 1년 동안 낮에는 일터에서, 밤에는 독서실에서 주경야독하며 학비를 마련하고 이듬해 지방의 모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4년 동안의 학창시절은 학비와 생활비 문제로 건설현장, 커피숍, 레스토랑 알바 등 안 해본 것 없는 시간을 보내며 졸업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젊음을 만끽하는 캠퍼스의 낭만이 내게는 사치였다. 이때의 삶이 어쩌면 가장 힘들고 어렵고 처절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20대의 삶은 지금 돌이켜보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고, 지금은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성공하고자 꿈을 꾸며 살고자 발버둥 치는 날들이 고통스러웠다. 어쩌면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이 자리에서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채로 축협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누구보다도 직장생활에 충실했고 선배님들과 임원들에게 인정받았다. 많은 상장과 2년에 걸친 연속 특별 승급은 축협에서 최초라고 했다. 거기엔 20대에 형성된 끈질긴 삶의 태도가 작용했던 것 같고, 남해 특유의 강인한 생활력도 기여한 것 같다. 고생해본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대학원에 진학해 식품공학 석사를 하며 학업도 지속하게 되었다. 주경야독의 생활이었고 지금 돌이켜 보면 완전 철인이었다.”

▲축협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협동조합 조직의 한계는 내 속에 흐르는 열정적인 유전자와 체질적으로 맞질 않았다. 협동조합은 많은 장점도 있지만 일반기업과는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 많은 차이가 있다. 나는 도전하고 성과를 만들어내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체질에 맞았다. 딱 9년 6개월 근무하고 사직하면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주위에서 만류했고 임원들이 사직서를 받아 주질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마음을 굳히고 세 번에 걸쳐 사직서를 내고 이틀 결근을 하니 사직서를 받아줬다. 지금 생각하면 사직의 그 용기는 참 대단했던 것 같다. 기본적인 사업자금 등 사업을 하기엔 모든 것이 부족했는데 아마도 열정 하나로 도전했던 것 같다. 20대에 고생했던 것이 도움이 됐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겠다는 꿈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역량은 무엇인가?
“축협에서의 업무가 일본, 대만, 필리핀 돈육 수출업무와 국내 유통 업무 전반이었다. 이러한 동종 분야의 경험은 독립 후 회사의 빠른 성장을 가져왔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처와의 관계는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20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속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며 내 삶의 활력소를 찾았고, 봉사를 통해 진정한 삶을 깨달아 가며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1% 이웃돕기 실천모임 운영위원장, 라이온스클럽회장, 경영혁신중소기업협회 사무총장, 경찰서집회시위 자문위원장, 학교운영위원장, 지역 장학금 전달, 복지관과 아동센터 후원 등을 포함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업의 과정은 늘 긴장의 연속이고 희로애락이 함께한다. 많은 날을 지새우며 연구와 고민을 했다. 열정과 근면을 바탕으로 수없이 도전했다. 고통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해답이다.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고난이 지나면 반드시 기쁨이 스며든다.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가지며 행운이란 100% 노력한 뒤에 남는 것이다. 인간의 경제적인 탐욕은 끝이 없지만 사업이 안정된 요즘은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주위에서 사업을 잘하던 친구들과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살던 선배들이 어느날 갑자기 먼 곳으로 떠나는 걸 보게 된다. 올해만 두 번 그런 일을 겪었다. 천주교 세례를 받은 지 20여 년 되었는데 신앙인으로 베푸는 삶을 살고자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2017년에는 경기대 행정대학원에서 두 번째 석사과정인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했다. 이 나이에 젊은 친구들과 공부해서 졸업할 때 최우수 학업상도 수상했다. 늦었지만 박사 과정도 도전해 볼까 한다. 오늘 박사과정 원서를 제출하는 날이다. 공부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변했다. 참 인간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고향 남해에는 자주 가는지? 고향에서 느끼는 게 있으면 알려달라.
“고향 남해는 홀어머님이 살고 계신데 골프모임 등 특별한 행사 또는 고향친구들의 애·경사 외에는 자주 가지 못한다. 얼마 전 한가위 명절에 잠시 다녀왔는데 긴 연휴라 방역수칙 준수하며 관광지 몇 군데를 가족들과 둘러보았다. 마을들은 참 많이도 변했지만 역시 내 고향 남해는 자연 그대로가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물건에서 미조까지 해안 도로의 날씨 좋은 날 풍광과 일출은 최고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남해가 앞으로 이렇게 발전했으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남해가 머지않아 없어질 지자체의 상위에 속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장수하는 지자체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보면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귀어귀촌하는데 그들이 마을에서 단합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을 커뮤니티 형성이 필요하고, 이에 행정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마을만 보더라도 외지에서 귀어귀촌하신 분이 상당하던데 동네 어른신들과 원만한 관계가 잘 안 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복지행정이 남해에서 모범적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난개발의 인허가 문제다. 경치가 좋았던 곳들이 펜션이나 숙박시설로 인해 경관을 해치는 경우들이 있더라. 인허가에 있어 경관과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엄격한 행정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남해는 좋은 먹거리와 다양한 생물과 식물들이 함께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 절경과 역사적인 장소와 연계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아이디어로 관광사업 활성화도 고려해 봄직하다. 예를 들면 무인자동차를 활용한다든지, AI를 활용한 농업신기술 테마공원 조성 등 친환경 6차산업 활성화와 이에 관련된 기업체의 유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것을 통한 인구 유입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세수의 확대 등이 있어야 없어질 지자체가 아닌 살아나는 남해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가족관계는?
“청주 출신의 아내 황수정과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기러기아빠로 살았는데 코로나19가 우리 가족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 1월부터 다시 기러기로 살게 된다. 아내는 백신 접종 및 모든 준비를 차근차근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많은 꿈을 꾸며 다양한 경험을 통한 후회하지 않는 참삶을 살아가길 기대한다.”

가난해서 고생했던 젊은 시절에 좌절하지 않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업을 일구고, 경제적 독립을 실현한 후 이제는 사회에 대한 기여와 나눔으로 제2의 인생을 고민하는 문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그려갈 내일이 더 궁금해졌다. 그의 선한 영향력이 많은 사람에게 미치기를 기대하며 뿌듯한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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