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삼남 전 해수부장관이 섬마을 소년에서 해군참모총장을 거쳐 장관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한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 <인생항해>를 출간했다.

이 책은 제1부 출생 후 해군 장교가 되기까지, 제2부 해군 재직기간, 제3부 전역 후 활동, 제4부 삶의 철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240페이지 분량이다.

유 전 정관은 자서전 서문에서 “기나긴 세월 동안의 내 삶을 나의 가족들, 꿈을 가진 청소년들, 해군 후배들에게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책을 엮어 보았다. 내 삶의 일생을 정리하면서 나의 인생항해 기록이 캄캄한 밤에 등대가 되어 그들에게 삶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추천사에서 “유 전 장관님은 대한민국 해군 건설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해군참모총장 재임기간 중 해군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최초의 한국형 구축함인 광개토왕함이 취역한 것을 비롯해 잠수함, 기뢰부설함, 군수지원함, 상륙함, 소해함을 건조하여 현재 해군 전력의 상당 부분이 완비되었다. 1998년 12월 남해로 침투하는 북한 반잠수정을 격침시켜 해군의 철통같은 방위태세를 입증했다. 우리는 이 자서전을 통해 그의 멋진 인생항해를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동길 숭실대 명예교수는 “산다는 것은 연습 없이 달리는 마라톤이고, 빈 배를 타고 미지의 바다로 떠나는 항해다. 순풍에 돛단배 타고 떠나는 유람이 아니다. 폭풍우와 큰 파도를 이겨내며 목적지에 가야 하는 전투와 다름없는 항해다. 유삼남 자서전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 그의 삶의 궤적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기에 찬란한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유 명예교수는 유 전 장관의 초등학교 2년 선배이기도 하다.

다음은 자서전의 주요 대목이다.

“앞으로는 푸른 바다 위 돛단배가 언제나 고기잡이에 열중이고, 뒤로는 야산과 숲으로 울창한 금음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내가 태어난 남해 섬 옥동(玉洞)마을이다. 어린 시절 뒷동산에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남해 섬 소년의 꿈은 바다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가득했다. 6·25전쟁은 평화로운 옥동마을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린 시절 내가 직접 보고 체험한 인민군의 만행은 평생 공산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반공교육이 되었다. 그리고 군인이 되어 나라를 튼튼히 지켜야된다는 각오를 다짐하였다.”

“우리 세대는 참 어려운 삶이었다. 전기도 없어 호롱불 아래서 공부하며 중학교를 다녀야 했다. 나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 장학생으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별로 이름 없는 북부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창시절의 자립정신은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독립심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선택이라 했다. 해군사관학교를 지망한 것은 내 평생 가장 멋진 선택이었고 멋진 해군장교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나에게 훌륭한 장군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사관생도 4년의 생활은 피와 땀과 눈물이 요구되는 엄한 스파르타식 교육이었다. 그래도 사관학교에서 먹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주니 생활에 대한 걱정이 없어 좋았다.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 그리고 할 바에는 최선을 다하자며 생도 생활을 했다. 군인의 명예는 생명과 같음을 이때 배웠다.”

“해군 소위의 첫 발은 함정 근무로 시작했다. 위관장교 시절에는 통신관, 전탐관, 작전관 등의 실무장교로 함장님의 지시를 받으며 근무했다. 남해 경비 중에 간첩선을 조우하여 격침시킨 적도 있다. 소령, 중령 시절 선진해군을 배우기 위해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도 했다. 대령 때에는 함장으로 구축함을 지휘했다. 나는 해군장교로 동서남해는 물론 태평양까지 항해했다. 함장으로 마지막 항해를 하면서 바다 저편에는 꿈과 희망이 있음을 깨달았다. 해군제독이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으며 대장이 되어 해군참모총장으로 해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전역 후 한국해양대학교에서 강의하고 박사를 취득한 것도 아버님의 영향이 컸다. 제16대 국회의원과 해양수산부장관, 해양연맹총재, 성우회장을 맡으면서 국가에 대해 나의 마지막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인생은 항해와 같다!’고 말한다. 나는 해군생활 39년 중 12년을 바다에서 지냈다. 눈보라 치는 겨울바다와 한 치가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NLL을 응시하며 조국의 바다를 지켜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면 숱한 난관과 보람이 함께했다. 강한 파도가 강한 어부를 만들 듯이 청소년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한 불굴의 정신은, 나의 인생항해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전진하는 배는 멈추지 않는다. 배는 동력을 잃으면 항해를 할 수 없다. 내 인생항해의 동력은 열정이었다.”

“바다와 해군, 그리고 국가안보에 대한 사명감은 내 삶의 전부였다. 특히 해군은 군함을 타고 바다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가족이 사망해도 갈 수 없다. 가정의 모든 일은 아내 몫이다. 사랑하는 아내 김옥순과 해군가족으로 꿈을 잃지 않고 성실히 살아준 아들, 딸에게 감사한다. 전역 후 유방암으로 아내를 잃은 나의 슬픔은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나의 긴 인생항해에서 진정한 가족의 선장은 그녀였다. 나는 제2의 인생항해를 해야 했다. 아내를 잃은 어둠의 항해에서 나침반이 되어준 것은 지금의 아내 김인자이다. 많은 이해와 사랑으로 나를 내조해주고 있는 아내에게도 감사드린다.”

“사랑하는 딸 유승현, 아들 유승한, 손녀 유지은과 유지영, 외손녀 곽은빈, 외손자 곽준빈, 그리고 아내에게 나의 자화상을 바친다. 나의 삶에 힘과 용기를 주고 응원해준 고향의 향우들, 유(柳)씨 종친들, 해군사관학교 선후배와 동기생, 그리고 가까운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원고작성을 위해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준 지인들에게 감사드린다.”

유 전 장관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국훈장통일장, 보국훈장국선장, 보국훈장천수장을 받았고, 미국 정부와 칠레 정부로부터는 각각 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유 전 장관은 지난 9월 80세 산수에 <인생항해> 출판기념식이 코로나19로 무산되어 아쉬워했다. 모든 공직을 떠나 제2의 인생항해는 주로 그림과 서예에 집중하고 있다. 서예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썼고, 그림은 각종 전시회도 참가하면서 새로운 영감과 도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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