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료실에서 류지앵 관장
어린이 자료실에서 류지앵 관장

옛 사람들은 가을을 두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 불렀다. 가을의 드높은 하늘과 풍성한 수확에 빗대면서 등불 아래 책을 가까이 두고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즐거움으로 견주었다. 이처럼 가을은 수확과 결실, 채움이 이뤄지는 시간이다.
남해에도 어엿한 가을이 왔다. 최근 기온이 뚝 떨어져 얼떨떨하지만, 들판을 보면 추수로 빈 논이 보이고, 도서관의 꺼지지 않는 불빛도 눈에 띤다.
풍요와 성장의 시간. 또 독서하기 좋은 계절. 항상 책과 함께 하는 남해도서관 류지앵 관장을 만나 책과 함께 한 30년 세월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남해도서관에는 벌써 세 번째 근무하시는 걸로 안다.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는가?
특별한 인연이라면 시댁 친지분들이 남해에 사신다. 남편의 조부모께서 남해 분이셨는데, 시부모님은 삼천포에 사시다가 남편을 낳았다. 남해도서관에 첫 부임할 때는 일반 직원이었다. 그때부터 유다르게 남해 분들과 정을 많이 나누었다. 늘 도움을 받았고,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웠다. 마음이 가니 자연스레 자꾸 오고 싶었는데, 뜻이 이뤄졌으니 특별한 인연이 있긴 있나 보다. 관장으로서 첫 부임지도 남해도서관이었다.

도서관장으로서 운영의 핵심으로 삼는 기준은 무엇인가?
경남도 사서직 시험에 합격한 해가 1991년이었다. 30년 동안 도서관의 외형과 구성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도서관에 와 책을 정리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일본사람들의 책을 번역한 게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양한 외국인들의 책도 적지 않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책도 크게 늘어났다.
이제 도서관은 책을 빌려주고 읽는 장소로서만 기능하지 않는 것 같다. 학교는 오래 다녀도 16년이지만, 평생 다니는 곳이 도서관이다. 그래서 와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 책 너머의 지식과 교양, 기능을 익힐 수 있는 곳, 누구나 부담 없이 오는 쉬고 배우는 열린 공간으로 변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간다.
그래서 교양 강좌나 저자 초빙 강좌, 로비를 이용한 작은 갤러리 운영 같은 행사를 많이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남해 군민 누구나 오셔서 즐기고 느끼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남해도서관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왼쪽이 노상옥 주무관, 오른쪽은 이원준 주무관이다. 몇몇 직원은 출장중이라 빠졌다
남해도서관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왼쪽이 노상옥 주무관, 오른쪽은 이원준 주무관이다. 몇몇 직원은 출장중이라 빠졌다

시 창작 수업에서 곧 일곱 분이 개인시집을 내고 합동시집도 출간한다고 들었다. 시 창작 교실을 운영한 소회와 성과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시 창작 교실은 올해로 4년째다. 벌써 세 번 합동시집을 냈으니 그 간 쌓인 작품으로 충분히 개인시집 간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여겼다. 봄에 말씀 드리니 주저하는 분도 계셨지만, 다들 크게 의욕을 보이셨다.
김춘선 님 같은 경우는 연세가 83살이고 읍에 사시지도 않는데, 매주 빠짐없이 나와 시 공부에 흠뻑 빠지셨다. 시집을 내는 일은 정말 남다른 체험이다. 생각의 실타래를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내고, 마음의 갈래를 잘 다듬는 일이다.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 아울러 시 창작을 지도해주신 농부시인 서정홍 님과 송인필 시인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시집을 내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작품을 모으는 데는, 다들 부지런히 쓰셨으니까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한꺼번에 여덟 권의 시집을 내려 하니 출간비가 만만치 않았다. 단가를 낮추는 데도 한계가 있었는데, 마침 여러분들께서 성원해 주셔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고, 한편으로 너무너무 감사하다.

도서관장인데 책은 많이 읽으시는지? 또 군민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세 권만 추천해달라
(웃으며) 책을 가장 안 읽는 직업이 사서와 교사란 말도 있지 않은가? 저도 처음에는 직업으로서 책을 가깝게 하면 책도 많이 읽을 줄 알았다. 그런데 책더미(?)에 묻혀 살다보니 외려 책을 읽을 기회가 줄었다. 그래도 ‘역사’ 관련 서적에 관심을 두고 읽었다.
모든 책이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라면 『82년생 김지영』과 『노인과 바다』, 그리고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을 추천하고 싶다. 독서에도 편식은 좋지 않으니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으셨으면 좋겠다.

도서관장의 입장에서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생각이 든다. 너무 자주 접하니까 공기처럼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지 않나 반성한다. 책은 분명 영혼의 양식이고, 지혜의 원천이다. 그런데 책에도 수명이 있다. 도서관에는 도서 폐기 연한이 있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애야 한다. 그래야 새 책을 들일 수 있고, 오래된 책은 세균 감염 위험도 있다. 게다가 맞춤법이 바뀌면, 특히 어린이 책은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그럴 땐 가끔 아쉽고 서운하다. 하지만 사람처럼 책도 신진대사가 필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종이책은 보존용으로만 남고 전자책이 지배할 날도 올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관장으로서 군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주 도서관에 찾아오셔서 두루 책도 읽으시고, 행사나 전시에도 많이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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