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종욱
작가 임종욱

세상을 살다보면 갈등도 있고, 충돌도 빚어진다. 욕망 덩어리에서 한 발짝도 물러날 리 없는 인간이란 존재는, 리처드 도킨스도 말했듯이 ‘이기적 유전자’로 똘똘 뭉쳐져 싸움이 붙으면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맹자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의 출발이라며 양보하는 미덕을 말했는데, 겸양은 패자의 논리로 전락한 지 오래인 듯 하다.

누군가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장본인은 바로 ‘인간’이라고 말했다. 짐승도 저희들끼리는 잡아먹지 않는데, 인간은 피와 살을 원하지도 않으면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또는 사소한 전리품으로 동족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다. 결국 인간이 멸종한다면 자신의 왼손에 의해서일 것 같다.

너무 거창하게 말하지 말자. 나는 남해에 온 지 10년째인데, 처음에는 이른 바 ‘텃세’를 당하기도 했다. 입사식이란 말처럼 새로운 공동체에 진입하려면 그만한 장벽은 넘어야 하는 법이다. 다행히 나는 남해에 나를 옹호해주는 지인도 여러 분 계셨고, 김만중문학상을 받고 왔다는 어드밴티지(?)도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남해에 정착했다.

몇 년 뒤 나를 따라온 두 딸은, 평생 도시에서 산 탓에다 약간의 ‘왕따’가 더해져 학교생활을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친구도 있고 아는 사람도 많아져 무난히 지내고 있다.

나와 두 딸은 굳이 말한다면 ‘귀촌’한 사람이다. 지금 남해는 인구가 줄어들어 난리다. 어떻게 하든 인구를 늘리고자 갖은 노력을 다한다. 결국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남해로 들어와 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출향 군민이 돌아오기도 하겠지만, 외지 사람들이 애정과 의욕을 가지고 찾아와야 궁극의 해결책이 된다.

남해 지역 신문을 보면 매주 귀촌한 사람들의 훈훈한 미담과 포부가 실린다. 그만큼 오는 사람도 절실하고 맞는 사람도 간절하다. 기사를 볼 때면 나는 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 가족이 잘 정착하면 열 가족이 뒤따르지만, 한 가족이 떠나버리면 스무 가족이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그들이 안착(安着)했을 때 남해의 인구도 늘어난다.

알브레히트 뒤러, <기도하는 손>       우리들의 손, 서로 맞잡아야 할 / 색연필화

얼마 전 나는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남해로 귀촌한 한 가족이 큰 어려움을 만났다. 자세한 사연은 싣지 못하지만, 그들의 잘못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가족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사람의 따뜻한 품만 믿고 남해로 왔다.

누군가의 비방을 듣고 한 구석으로 내몰릴 때 그들을 감싸주고 항변해줄 사람이 나보다도 더 없어 보였다. 안타까운 처지를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그를 보고 참담한 기분을 숨기기 어려웠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심성이 착해 누구를 해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남해에서 그야말로 의지가지없는 그들로서는 기댈 언덕이 사라지면 남해를 떠날 수밖에 없다. 몇몇 생각이 짧은 사람의 완강함 때문에 한 가족이 떠난다면. 그들에게도 불행이고 남해에도 재앙이다.

오늘 그림은 초상화로 유명한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가 그린 <기도하는 손>을 색연필화 공부반에서 모사한 것이다. 색깔은 내가 살짝 입혔다.

자신을 희생하고 뒤러의 그림 공부를 뒤에서 도운 친구가 성당에서 신에게 그의 성공을 간원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 그렸다고 한다. 우리에게 왜 손이 두 개 있는가? 한 손은 내밀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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