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항, 진성(鎭城)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파수대
평산항, 진성(鎭城)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파수대
  • 임종욱 인턴기자
  • 승인 2021.10.1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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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아름다운 항구 #2
평산항에서 본 평산마을 전경
평산항에서 본 평산마을 전경
평산마을 언덕에서 본 항구 모습
평산마을 언덕에서 본 항구 모습
평산마을에 있는 바래길 작은미술관
평산마을에 있는 바래길 작은미술관

평산마을 위를 지나는 도로에서 보면 평산항은 지리적으로 천혜의 요새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양쪽으로 꽤 높은 산이 해안에서부터 솟아 올라 밖에서 내부를 볼 수 없다. 또 뒤편에는 망기산(341m)을 비롯한 고동산(359m), 장등산(363m)이 병풍처럼 항구를 둘러싸 밖으로부터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관측할 수 있다.

꼭 군사적인 이득만이 아니다. 이런 지형은 바닷바람과 산바람을 우회시켜 쾌적한 기후 조건을 제공한다. 주변에 넓은 논밭이 없어 농사를 지어 생활할 수는 없어도, 바다를 건너면 여수가 코앞이라 각지의 산물을 우선적으로 받아내고 내보낸다.

지역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남해로 유배를 온 사람들 중에는 이곳 평산항을 통해 여수에서 남해로 들어온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어업 중심지로 제격이었고, 오래 전부터 진성(鎭城)이 마을을 둘러쳐 있어 늘 사람과 군사들로 붐볐다는 것이다.

평산항은 이런 좋은 환경을 가졌지만, 남해에서도 치우쳐 있고 산지와 구릉이 많아 개발의 손길에서는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금 이런 평산항에도 변화의 조짐들이 일고 있다. 작년 마을 이장님의 부탁으로 이곳 문화유산을 재현하는 일의 스토리텔링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이장님은 움푹 파인 마을 외곽을 따라 성곽이 둘러선 흔적을 보여주면서, 옛 성을 복원하고 군사 기지로서 면모를 되찾으면 늦은 관심이 오히려 빠른 발전의 지름길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마을에는 옛날 우물터도 보존되어 있었고, 성곽의 뼈대라 할 만한 네모난 바위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첫 술 밥에 배부르지는 않겠지만, 작은 돌을 쌓아 석탑을 일궈내듯 앙증맞게 아름다운 평산항은 새로운 주목을 받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문화와 휴식을 이끄는 작은 미술관, 아난티 리조트와 골프장
평산항은 문화 휴양지로서 마추맞은 조건을 딱 갖추었다. 바래길 12코스에 해당하는 임진성길 시작점이 평산항(작은미술관)인데, 12코스는 서면 서상에 있는 스포츠파크까지 이어진다. 또 가천다랭이마을에서 시작해 평산항까지 이어지는 11코스 다랭이지갯길의 종착점이기도 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득히 펼쳐지는 바다를 어깨에 두고 쉬엄쉬엄 걸으면 땀과 호흡이 어우러지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난티 리조트와 골프장이 있다. 비교적 서민친화적인 시설이라 큰 부담 없이 와서 골프와 함께 휴식도 즐길 수 있다. 리조트에서 마음껏 지내다가 평산항에 문을 연 해녀횟집(☎862-7838)이나 동광횟집(☎862-8480), 평산횟집(☎863-1047), 복만식당(☎863-5151) 등에서 발을 뻗고 떨어지는 노을의 멋진 풍경을 즐기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도 좋을 것이다.

낮부터 왔다면 마을 안 옛 보건지소 건물을 개조해 만든 ‘바래길 작은미술관’에 들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도 또 하나의 풍치이다. 미술관에는 연중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된다. 유화부터 수채화까지 여느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평산항에 오면, 주변을 두르고 있는 대마도나 죽도, 목도 등 조약돌 같은 작은 섬의 섬세한 경치를 앞에 두고 건강과 예술, 그리고 해산물의 맛깔스런 배려까지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건질 수 있다.

복원될 미래의 평산진성, 새로운 문화 관광의 요람
아직은 바람에 그칠 뿐이지만, 남해와 평산을 지켰던 진성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복원된다면 평산으로서는 천군만마요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예전부터 남해는 군사 요충지라 곳곳에 산성과 진성이 있어 방어의 선봉에 섰다. 마을을 둘러 성곽이 호위하는 가운데 성길을 따라 마실 가듯 한 바퀴 돈다면 이보다 멋진 역사적 낭만이 없을 것이다.

평산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이미 복원된 임진성도 있고, 산을 타고 오르면 만나는 파수대까지는 트래킹 코스로서도 그만이다. 포구와 진성, 그리고 문물의 교류까지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두루 갖춘 항구는 남해에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군사적 중요성을 알려주려는지 평산1리 마을회관 앞에는 1887년에 세워진 <행만호조후남현영세불망비>가 한 귀퉁이에 서 있다. 만호(萬戶)는 고려와 조선시대 진장(鎭將)의 품계와 직책인데, 경상도에는 수군만호가 19명 있었다니 상당한 지위의 무관이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마모가 심한 비석은 만호 조남현(趙楠顯)을 두고 “창고를 열어 주민들을 보살펴 다들 편안히 쉬었다”며 “그 공로가 비할 바 없다”고 기록했다.

평산항의 반을 차지하는 조선소 부지를 활용해 성벽을 뒤로 한 채 아담한 리조트나 펜션을 지으면, 요트나 낚싯배가 가르는 물결 소리가 귀전에서 단잠을 재촉하지 않을까. 그 베갯머리에서 우리의 신산했던 옛 역사를 더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본다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관광지가 성큼 다가올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미리 연연하지 않아도, 오늘 그대로의 평산항도 충분히 발걸음을 멈춘 보람을 안긴다. 골목길을 돌다가 노을을 만끽하고, 아슴한 밤하늘을 보며 별빛을 헤아리는 즐거움은 ‘쌔이’ 찾아오라고 우리에게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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