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이 가을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렸던가요. 그만큼 한 해 힘들었던 나날들이 가을을 통하여 결실을 거둘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까? 이처럼 결실과 풍요로 상징되는 가을이 찬란히 빛을 발하는 것은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이 황금 물결을 이룰 때이지만 올해는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길게 남는 듯합니다. 그것은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거리 두기, 집합금지, 이동금지 등으로 가을의 정취를 느껴볼 기회가 예전처럼 그리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황은 올가을이 다 가더라도 해소될 것 같지 않으니 더욱더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을을 실감 나게 하는 정겨운 모습들이 남아있기에 그리 실망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을 즈음 산야 곳곳에 맺어지는 열매의 풍성함이 있으니 그렇고,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있으니 또한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가을의 향취를 물씬 풍기는 감 홍시가 있기에 가을의 이미지는 더욱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빨강과 주황으로 익어가는 감 홍시. 마침 주변 산야의 오색단풍과도 극적인 조화를 이루니 그 비경(祕境)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 풍성함이 깃든 감 홍시에 매료될 즈음,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일 단풍은 또 하나의 볼거리로 시선을 이끌 것입니다. 형형색색 단풍이 펼쳐지기까지 전개되는 우주의 섭리를 만끽하며 삶의 의미와 생명의 오묘함을 체득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가을입니까? 이러한 비경을 벗 삼아 사색을 즐기기도 하고 삶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본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감 홍시의 다정다감함과 단풍의 비경이 가을을 상징할 특징이라면 이 가을이 떠나가기 전에 그러한 비경을 마음에 담을 요령에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 가을에 여행을 떠난다는 것, 정말 말만 들어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라는 괴질이 범람하는 이 엄정한 시기에 여행을 간다는 것이 그리 자유스럽지 못한 현실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엄정한 시기에 여행을 포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여행의 묘미를 살려 기존의 관점이 아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전개해 보면 어떨까요. 기존의 범위를 넘어선 전혀 새로운 여행, 그러면서도 가을의 이미지인 풍요를 마음껏 담아낼 그런 여행으로 말입니다. 

이를테면 내 안을 찾아가는 내면 여행과 같은 것입니다. 몸의 안과 밖을 형성하고 있는 육신이 건강해야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맑아져야 그 본성에서 품어나오는 인품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이를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행보에서 나무(뼈)와 바람(기운)과 땅(살)과 불(양기)과 물(음기)이 공존하는 육신을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그 이면에서 육신을 이끄는 마음과 성품을 탐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내면 여행이란 결국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더 깊은 안쪽 그 중심에 내재해 있는 본성을 찾는 길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본성에 이르는 길이 풍요로 대변될 가을의 참모습이자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 어느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본성이 풍요로워지는 데 장애가 되는 부정의 씨앗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 사유야 어찌 되었든 이를 찾아내지 않고서는 풍요는 고사하고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씨앗이 발화된 지점이 최초 어디였으며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로 인해 자신이 어떤 생각을 굳히게 되었는지 또 그 생각을 절대적 신념으로 지니게 된 사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러한 부정의 씨앗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일희일비하기도 하고 때로는 욕망에 갇혀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매매 사사 불현듯 일어나는 욕망을 거슬릴 수는 없지만, 이 욕망의 시초가 된 부정의 씨앗을 찾아 다스리는 것이 마음에서 풍요를 담을 유일한 기회라면 이를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를 보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내면 여행. 어쩌면 그것은 지구 곳곳을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더 깊고 세밀한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는 부정의 씨앗을 전환 시킬 희생과 헌신, 살신성인이라는 고차원의 의지가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이상적 가치를 모범으로 보여주는 세포의 활동에서 여실히 증명되기도 합니다. 세포의 기막힌 헌신 그리고 자의적 의지 이것이 우리 몸을 건강하게 이끄는 요소가 된다면 이들 세포의 주인인 사람이 이를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내면 여행을 통하여 이를 직감하였다면 세포의 그 농후한 헌신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간절함과 지극함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그 헌신에는 배려와 겸손, 수용과 포용, 용서와 사랑이라는 가장 빛나는 풍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부정의 씨앗)을 희생함으로써 전체 세포의 활력(대 긍정 심의 발로)을 돕는다는 이 엄연한 사실. 우리 몸 안에 이처럼 아름다운 헌신이 있다니 그렇다면 그 주인인 사람도 이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주는 것이 이 가을을 빛나게 해줄 풍요가 아니겠습니까? “나는 나이지만은 내가 아니다”라는 구호처럼 그래서 이 가을에 담아내야 할 내면 여행의 진수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