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 와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남해살이 10년째에 접어든 지금 싫어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지만, 존경하고 마음 주는 이들은 머리털보다 많다. 10년의 반을 나는 고현 중앙동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고현이라 부르고 싶을 만큼 정이 웅숭깊게 들었다.
내가 고현에서 알게 된 좋은 분들의 대부분은 ‘남해고현집들이굿놀음보존회’ 단원분들이다. 이분들을 알게 된 건 고현으로 이사 온 직후부터다. 게이트볼장 벽에 ‘남해화전매구보존회’에서 단원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입단보다는 단체를 취재하고 싶어 연락을 드렸는데, 받은 분이 총무를 맡고 계셨던 장영주 님이다.
그때는 서울에 계셔 대면하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반가워 하셨다. 취재를 하고 인사를 나누고 연습 때면 나가 구경을 하다가 권유에 못 이겨 배움을 청하게 되었다.
춤꾼들은 연습이 끝나면 온몸을 뒤덮은 땀을 가셔내고자 사무실에서 술잔을 돌렸는데, 집이 코앞이었던 나는 음주운전 걱정이 없다 해 술세례를 받았다.
주량을 넘긴 술자리가 연일 이어지자 ‘유리 몸’이었던 나는 결국 나가떨어졌지만, 다들 나보다 연세가 많았던 그 분들은 건강이 넘쳐났다.
장영주 총무님은 몸집은 작아도 결기가 굳세고, 애교(?)도 못지않다. 숫자에는 약해도 일에서 빈틈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금방 총무님의 팬이 되었다.
총무님은 전라도 화순이 고향인데, 학교를 마치고 하사관으로 입대한 씩씩한 군인을 만나 부부가 되었다. 그 남편이 이즘은 내가 ‘형님’이라 부르는, 군인이 천직인 김정준 님이다. 몸매가 가냘프고 길어 키가 나보다 한참 큰 줄 알았는데, 똑같은 175센티인 줄 알고 놀랐다.
김정준 형님은 고현 갈화사람이다. 젊어서는 반항기가 넘쳐 고향을 박차고 나와 입대해 말뚝을 박았다. 오랜 동안 헬기 부대에서 근무한 탓인지 아주 민첩하고 야무지면서 서글서글하다. 집들이굿놀음보존회 회장 직을 맡고 있는데, 나는 지금 보존회의 사무국장 일을 보고 있다. 형님은 동갈화마을 이장이기도 하다.
두 분에게 나는 갚기 어려운 도움과 은혜를 입고 산다.
혼자 산다고 집으로 불러 술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쪽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즐기기도 했다. 보존회의 여러 분들과 어울리면서 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의 참맛을 느낀다.
두 분은 금슬도 좋다. ‘사랑싸움’을 한다고 형수님이 가끔 토라지기라도 하면 형님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 몰라라 하는 척한다. 서로 정 떨어졌다 말은 해도 ‘속 깊은 사랑’은 금방 간파 당한다.
올해 초에 나는 두 분에게 드리는 시를 한 편씩 써서 드렸다. 시랄 것도 없는 허술한 작품이지만, 이를 또 그렇게 고마워 하셨다. 달리 보은할 길이 없나 싶어 고민 끝에 매구복을 입고 다정하게 웃고 있는 두 분을 그려 보았다.
그려놓고 보니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형수님은 전혀 실물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림보다 일만 배는 더 예쁘고 곱다. 실력 탓을 해야겠지만, 나중에 솜씨가 나아지면 멋들어지게 그리리라 위안하면서 그림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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