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 끝났다. 코로나로 인해 추석과 설날의 풍경이 불과 지난 2년 전 명절과 많이 달랐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의 명절을 되돌아 보면 며느리나 어머님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가사노동때문에 그리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남해의 어머님들은 명절에는 다들 손이 컸다. 생선, 전, 탕국, 나물, 과일, 떡, 등등 상차림이 끝이 없었다. 고향의 식구들 보다 도시에서 온 자식들이 가득 싸갈 만큼 음식을 한 것 같다. 시어머니가 앞장서서 마련하니 가져가서 먹든 안 먹든 어쩔 수 없이 며느리들은 따랐다. 집안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집안에서는 며느리들이 아들보다 2-3일 먼저와서 음식을 마련해야 했다. 물론 요즘에는 도시생활의 바쁜 핑계로 아들과 같이 내려 오지만 전날에 와서도 하루종일 음식 준비로 일하다 보면 몸과 마음도 아프고 우울증이 걸릴 것 같다는 얘기들을 하곤 한다. 

매년 2차례 설날과 추석마다 며느리들은 기름에 절어 지내야 했다. 명절에 먹을 양만 하면 될 터인데, 시어머님들은 늘 무지막지한 양의 전을 부치게 했다. 며느리들은 전을 먹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나고 기름 냄새로부터의 해방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더 이상 명절이라고 기름 냄새를 하루종일 피우지 않아도 될 만큼 전의 양도 줄어들게 됐다. 

매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친척들은 늘 있었지만, 매년 그 인원도 줄어들고 짧은 인사와 간단한 다과로 보내는 명절은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지난 해와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 친척도 찾지 않고 도시의 가족중에서도 아들들만 오는 이상한 명절이 된 것 같지만 모이지 못한 명절을 두 해나 보내니, 명절의 간편함과 간소함이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올 추석 남해의 풍경은 남해사람들의 추석과 추석휴가를 온 도시인들 2개의 문화가 공존한 것 같다. 고향을 찾은 가족들은 추석당일 비로 인해 성묘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늙으신 부모님을 위해 연휴 첫날부터 와서 농삿일을 도와주는 옛날의 전통을 이어가는 남해사람들과 달리 상주해수욕장에는 여름철 피서객만큼이나 사람들이 찾아와 즐기고 사우스케이프와 남해 아난티를 포함한 전국에서 2번째로 많은 남해펜션들의 객실이 만실을 기록할 만큼 많은 도시인들이 추석에 남해를 찾았다고 한다.  

설과 추석 명절문화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19가 분기점이 될까?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추석에 1박 이상 귀성 계획이 있는 이의 비율이 늘 30%를 넘다가 작년, 올해는 10%대에 그쳤다고 한다. 가족의 의무로 하루 얼굴만 보이고 90%는 도시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여러 조사에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응답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제사는 부계 친족집단의 결속이 사회의 기초이던 옛 시대가 낳은 의례다. 친족연결망이 약화된 현대에도 제사는 흩어진 부계의 핵가족 구성원을 재결속하는 가족주의 의례로 살아남았다. 그래서 제사는 단지 의례가 아니라 강고한 가족주의 규범의 무기다. 

언젠가 존경받는 우리사회의 지식인이었던 한 분이 명절의 차례와 제사를 포함한 전통의 모든 의무를 감당했지만 당신 세대로 끝낼 테니 자식들은 따르지 말라 당부하고 떠나셨다 전한다. 

우리 시대 마지막 가부장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 시대 가부장들의 책임윤리에 아파 오면서 점차 사멸하는 것 같아서 가슴 시린 이유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