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올해도 어김없이 한가위 추석이 찾아왔다. 물리적 시간은 균일하게 적용되어도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은 성격만큼이나 다르다. 행복한 날의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지만, 괴로운 날은 하염없이 더디게 흘러간다. 2021년도 이제 4분의 1만 남았는데, 과연 올해 저마다의 시간은 어떤 속도로 지나갔을까?

주변에 물어보면 올해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탄식한다. 엊그제가 새해고 설날인 것 같은데, 벌써 가을이란다. 너무나 덧없이 흘러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다들 올해는 행복에 겨웠다는 말인가? 올해가 행복했다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낙천적이거나 몇 백 억대 부자이거나 견공(犬公)의 지능을 가진 사람일 듯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라는 강풍은 한 해 내내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리며 번지고 있다. 올 초만 해도 확진자가 백 명만 넘어도 큰일이라며 법석을 떨었는데, 지금은 2천 명을 넘어도 ‘그런가 보다’ 한다. 그만큼 우리는 재난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누구나 재앙이 덮치면 허둥대고 절망하지만, 특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힘겹다. 좋게 포장해 ‘자영업자’라 하지만 사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날품팔이다. 방역조치 때문에 제대로 사람이 모일 수 없으니 장사가 될 리 없다. 우리나라에는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며 줄여야 한다고 떠드는데,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 일이 목청을 높인다고 가라앉진 않는다.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돕겠다며 경제를 살리겠다며 외치는 고위공직자와 정치가들은 재난지원금을 80%를 주니 88%까지 올리니, 사람들이 구시렁대자 90%로 늘리겠다며 아주 고무줄놀이를 한다. 잇속에 빠져 전 국민에게 지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 준다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남해읍시장, 유화, 50X65cm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한쪽 문은 열어둔다고 말한다. 

온갖 재앙과 질병, 환난이 쏟아져 나온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도 ‘희망’이라는 한 줄기 빛이 남아 있다고도 한다. 연일 뉴스에서 마주치는, 절망에 허덕이다 세상을 등진 사람들 기사를 읽으면 아예 모든 문이 닫혔고 ‘희망’이라는 빛도 꺼진 게 아닐까 하는 섬뜩한 느낌으로 소스라친다.

군대말로 “머리를 박고 있어도 국방부의 시계는 돌아간다”는 너스레가 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결국은 끝날 때가 있다는 뜻이겠다. 나는 치과 가기가 제일 무서운데, 계단을 오를 때마다 30분만 지나면 이 계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 오리라며 자신을 다독인다.

호환마마가 몰아치는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려도 기어이 한가위 추석은 온다. 골골마다 집집마다 햅쌀로 밥도 짓고 떡도 해먹고, 사과, 배, 밤, 감 등 과일들이 그득한 잔칫상이 차려지리라.

올 추석은 다행히 백신 접종이 원만하게 진행되어 작년처럼 귀성 발길을 붙잡지는 않을 모양이다. 한 해 걸러 오는 고향이니 얼마나 많이 그리웠고, 더 반가울까. 친구끼리 가족끼리 시장거리로 나가 막걸리로 목도 축이고 빈대떡에 파전을 숭숭 집어 먹어보자. 그래서 너무나 행복해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 어떤지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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