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더니 벌써 추석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올 추석은 왠지 모르게 마냥 즐겁지도 반갑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오랜 코로나19로 인해 올 추석에는 산들산들 불어오는 고향의 청량한 갈바람의 정취를 느끼기 어려울 것 같은 데다 저만치 성큼 높아진 맑은 하늘을 병풍삼아 노랗게 잘 익은 고향 들녘의 알곡과 주렁주렁 맛나게 익어가는 오곡을 직접 눈에 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령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 선영에 제사 지내지 못하고 연로하신 부모님과 고향을 지키는 친지들을 직접 뵙지 못한다 할지라도 올 추석에는 모두 만월(滿月)을 가슴에 품고 사랑과 정이 가득 찬 행복하고 넉넉한 추석 보내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부족함이 없는 저 둥글둥글한 보름달을 보며 믿음과 소망으로 서로를 배려해 주는 사랑이 꽉 찬 추석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 삶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부모님의 빛바랜 사진 앞에 눈물로 불효의 용서를 빌어보기도 하고, 혹여 취직을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식을 포옹하며 사랑스런 마음으로 위로하면서 가족끼리 따뜻한 정을 나눈다면 타향에서 보내는 추석도 결코 허전하거나 허망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올 추석에는 한동안 뜸했던 친구와 친지, 친척에게 전화도 하면서 행복하게 웃음 짓는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고향길 가지 못한다 해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의미 있고 소중한 추석이었으면 합니다. 

꽹과리와 장구의 굿패 장단에 신명난 어깨춤으로 더덩실 춤을 추며 웃음꽃을 피웠던 일도, 석사치기와 윷놀이, 그리고 노래 콩쿨대회로 동네마다 떠들썩하게 놀며 즐거워했던 추억을 우리네 기억 저편에 떠올리며 모처럼 넌지시 웃음지어 보는 회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특히 올 추석에는 혼술이라 할지라도 막걸리 한잔 하면서 좀 취해 봄직도 좋을 듯합니다. 우리 모두 그동안 멀고도 먼 외딴 섬에서 상경하여 고군분투하며 객지생활의 노고를 잘 이겨내었습니다. 

올 추석에는 “너 정말 열심히 살면서 고생했다.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 봄직도 합니다. 혹여 현재 생활이 조금 힘들다 하여도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꿋꿋하게 이겨내는 시간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술잔에 비친 고향의 담장 너머 달그림자에 지난날의 상념과 힘든 일들을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오뚝이처럼 내일 또다시 일어나는 의미 있는 날이면 더욱더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올 추석에는 저도 이성복 시인의 시 구절 떠올리며 모처럼 아내와 함께 막걸리 잔 기울이면서 소담스런 얘기 나눠 보려 합니다.

“… 고향이 타향이 된 이들이/고향이 객지가 된 이들이/한가위엔 연어가 되어서/한 옛날 맴돌던 언저리서/술잔에 푸념을 타 마시며/거푸 잔을 돌린다. … 고향을 떠난 이는/외톨로 떠돌아 외롭고/남은 이는 다 떠나서 서럽단다/정들면 어디든 고향이라지만/미물도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데/못내 가슴에 고향을 키우는 은빛 연어도/선영하(先塋下) 어버이 발끝에 앉아/고향을 가슴에 심는다/눈에다 고향을 담는다.”

비록 올 추석에 저도 눈에다 고향을 직접 담지 못하지만 가슴에 만월을 품고 술잔에 푸념과 상념을 타 마시면서 선영하 어버이 발끝에 앉아 불효를 빌어 보려 합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힘든 삶을 살아온 저에게 “너, 정말 그동안 고생했다”고 위로도 해보려 합니다. 향우님들, 우리 모두 함께 배려하고 위로하며 힘내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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