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월 시름일랑 달빛 아래 보내노라
한 세월 시름일랑 달빛 아래 보내노라
  • 임종욱 인턴기자
  • 승인 2021.09.1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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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인들의 추석 보내기
김득신(1754~1822)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
김득신(1754~1822)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

추석은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흥겨운 명절이다. 설날이야 매서웠던 추위가 걷히고 새해를 알리는 시절이니 기대가 넘치지만, 그래도 겨울의 끝자락은 여전히 춥기만 하다. 그러나 추석은 모든 게 풍성한 계절이다.

봄과 여름 구슬땀을 흘리며 일구고 가꾼 곡식들이 들판에 가득해 먹거리는 넘쳐나고, 산에는 온갖 과일들이 무르익어 군침을 돌게 한다. 그러니 굳이 고르라면 다들 설날보다 추석을 택하지 않을까?

이 아름답고 보람찬 명절은 요즘의 우리들만큼이나 옛 사람들에게도 뜻 깊었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송편을 맛보면서 술 한 잔에 얼큰해 둥근 보름달을 즐긴다면 세상 모든 근심은 한순간에 날아간다.

시를 좋아했던 옛 문인들도 이런 추석의 정취를 느꺼운 마음으로 노래했다. 근심을 안고 사는 게 인생이니 추석이라 해서 마냥 즐거울 수야 없지만, 사바세계의 백팔번뇌와 중추가절의 만단흥취를 시에 담아 흘려보냈다.

추석을 노래한 많고도 많은 옛 시 가운데 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추석을 맞는 감회를 나눠보자.

김홍도(1745~?) 풍속화 타작
김홍도(1745~?) 풍속화 타작

성묘하며 사람구실, 흥에 겨워 신선놀음
조선 중기 때의 시인 권호문(權好文, 1532~1587)에게 추석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왔던 듯하다.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며 산소를 찾아 차례를 지내는 일과 그윽하게 취해 휘청거리며 귀가하는 소요유(逍遙遊)가 어우러진 시절이었다.
『송암집』 속집 제5권에 보면 <추석에 성묘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 있어(秋夕觀上壠有感)>란 제목의 시가 나온다.

가을바람 넘실대는 무덤 모인 언덕에는 / 곳곳에 술병 들고 조상님께 잔 올리네. / 귀로에도 인간 세상 감흥은 여전해 / 달빛 아래 취한 이를 자손들이 부축하는구나.
西風吹動白楊原 處處携壺酹古魂
歸路亦多人世興 月中扶醉盡兒孫

이 시에 보면 나를 있게 한 조상들과 내가 있게 한 자손들이 함께 등장한다. 소슬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친척, 후손들과 조상이 묻힌 선산을 오른다. 피붙이들이 추석을 맞아 다들 탈이 없는 것은 다 조상의 음덕 때문이라며 술잔을 올렸다.

돌아보니 나만의 고마움은 아니어서 산마다 골마다 사람들이 올라와 조상 무덤을 둘러싸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렇게 성묘하고 한 잔 두 잔 술을 마시니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휘청거린다. 이에 자손들이 “할아버지, 조심하세요” 하며 허리를 잡고 부축한다.
그렇게 추석은 조상과 나와 후손이 한 자리에 모여 가족의 도타움과 오붓함을 절감하는 명절이었다. 권호문의 시에서 그런 가족애의 뿌듯함에 공감하게 된다.

헤어진 아픔으로 더없이 슬픈 명절
한편 명절이 괴로운 회한(悔恨)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일 때문이거나 처지가 어려워 귀성을 미루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외로운 신세는 더욱 애달플 것이다.
남해로 유배 와 세상을 마친 김만중(金萬重, 1637-1692)에게도 한때 가족과 헤어져 천리 타향에서 홀로 지낸 아픔으로 얼룩진 추석이 있었다. 아래 시는 남해 유배 때가 아닌 선천 유배 때 쓴 작품으로 보인다. 『서포집』 권3에 <추석날에(秋夕)>란 제목으로 나온다.

서녘 변방에 둥글게 뜬 달이여 / 오늘 밤 내 옷깃을 비추는구나. / 맑은 빛은 누구에게 드리우려는지 / 먼 땅 나그네가 서로 의지하노라. / 서리 이슬에 조상 묘소는 멀고 / 새벽 저녁으로 자식의 직분 어긋났어라. / 아내와 자식들이 모여 곁에 있다면 /  서로 보면서 눈물을 흘리겠지.
西塞團團月 今宵照我衣
淸輝欲誰贈 遠客許相依
霜露先塋遠 晨昏子職違
妻孥還在側 相對涕交揮

외따로 던져진 변방의 추석은 찬바람도 일찍 불어 더욱 고적하다. 친지와 벗들은 멀리 한양에 있고, 달빛만이 짝이 되어 나를 비춘다. 마땅히 선영을 찾아 성묘하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며 자식 노릇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임금의 뜻을 거슬러 내쳐진 몸이라 명절이라도 옴짝달싹할 수 없다. 그저 이 달빛을 한양의 어머니와 처자식들도 함께 보려니 위로를 삼아야 한다. 내가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짓듯 아내와 자식들도 모여 눈물을 훔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념에 김만중의 추석은 다복(多福)과 다정(多情)이 넘치는 때가 되지 못했다.

역병이 도는 때, 그래도 반가운 귀향
조선 후기의 명재상이었던 채제공(蔡濟恭, 1720~1799)에게 추석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명절을 맞아 동대문을 나서 향리인 경기도 양주를 향했다. 작품에 나오는 ‘독음(禿音)’이나 ‘미음(渼陰)’은 다 양주의 별칭이다.
『번암집』 제5권에 <추석에 독음의 선산으로 나가다(秋夕 出禿音先壠)>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올해 우리들이 맞는 추석과 상황이 사뭇 비슷하다.

말을 타고 동대문 밖 길을 나서니 / 이슬이 날리는데 새벽닭이 우네. / 올해는 역병이 번진 탓인지 / 옛 무덤엔 올리는 향불도 적구나. / 교외 제단(祭壇) 나무 너머 별은 떨어지고 / 들판 나루 뱃전에는 구름만 깊었네. / 고운 봉우리가 동녘에 나타나니 / 멀리서도 내 고향 언덕인 줄 알겠구나.
匹馬靑門道 晨鷄白露天
今年多癘氣 古墓少香煙
星落郊壇樹 雲深野步船
姸岑正東出 遙識渼陰阡

이 해 전국에 역병이 돌았던가 보다. 옛날 역병이 돌면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죽었다. 그래서 성묘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많이 줄었다. 마치 2년여 동안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우리의 처지나 다름없다.

백성들의 삶을 책임지는 관료로서 이런 망극한 세상을 무력하게 지냈으니 참담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도 ‘별이 떨어지고’, ‘구름이 깊다’는 우울한 분위기를 빚어냈다.

그럼에도 고향은 언제나 반가운 곳이다. 길을 걷고 강을 건너 멀리 고향 언덕이 들어오니 산도 곱고 들도 예쁘기만 하다. 근심과 반가움이 뒤섞인 답답한 심정은 올해 귀성하는 이들이나 그들을 맞는 사람이나 다를 바 없겠다. 그래도 고향을 찾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신난다.

한가위 잔칫상에 둘러앉아 근심은 씻어내고 기쁨은 만끽하면서 오랜만의 재회를 즐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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