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더위와 습한 기후로 인해 지친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해이든 기후변화가 심할 때는 예년에 보지 못한 기후라고 일갈하곤 합니다만 올해의 더위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더웠다가도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는가 하면 곧바로 습한 기후가 엄습해 불쾌지수가 높아진 경우도 많았습니다. 

여기에다 우리를 더욱더 힘들게 한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겹쳐 여러모로 짜증 나고 힘든 여름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을 식혀줄 가을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기에 힘든 부분도 이겨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 같은 바램에서 맞이한 가을입니다. 하지만 미처 적응하지 못한 쌀쌀한 날씨 탓인지 가을을 만났다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습니다. 차라리 여름의 열기가 어느 정도 식혀질 즈음에 가을을 만났다면 계절의 변화에 따른 긴장감이 조금은 덜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가을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실이 아닐까 합니다. 결실은 성장을 도모할 척도이기에 차분한 준비와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결실을 담보할 정도를 농작물이나 과일나무를 통하여 만끽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마음에 담아야 할 결실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두고 고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우리가 담아야 할 정신적 결실을 마음의 변화를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의미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결실의 계절 가을을 더욱 고조시킬 추석은 이를 실행에 옮길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개 추석이 임박하면 벌초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벌초를 묘지의 풀이나 잡초를 깎는 것 이상으로 나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로 삼아보는 것입니다. 이를 도모할 일련의 과정들이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로 끝나는 와중에 선대와 후대, 우주와 자연 등 생명현상의 실마리가 될 삶과 죽음이 오롯이 나에게 귀결되어 성장과 퇴보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마음이 순환하고 있다는 이치에서 내가 좋은 마음이면 내 안에 모셔진 선대 조상 또한 좋은 마음을 지닐 것이며 내가 무엇을 기쁘게 먹으면 선대 조상들 역시 기쁘게 먹는 것입니다. 선대 조상의 정령이 모두 나의 마음 안에 귀결되어 있기에 내가 화를 내면 조상이 화를 내는 것이요, 내가 마음이 편안치 못하면 조상 또한 마음이 편안치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재물을 많이 차리더라도 내 마음이 불민하면 조상이 또한 불민해지니 이로써 살피면 모시는 날에 마음을 평온하게 가꾸도록 힘을 배양하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간혹 조상을 모시는 자리에서 가족 간에 다툼이 일어나 마음이 상하게 되는 일이 있다면 조상 또한 크게 상심해하는 이치를 간과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는 것은 다시 돌아오며 원인을 지은 것은 결과로서 반드시 되돌아오는 이치를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음은 의식이요 의식은 소립자 에너지의 새김이요, 인식이며 전달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기억과 신념, 소명과 사명으로 연결된 의지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추석 명절의 차례도 선대의 정령이 나에게 이르렀고 나의 정령이 다시 후손으로 이어지는 와중에 순환을 통한 창조와 진화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순환은 예와 지금을 관통하며 옛사람의 마음과 지금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가고 오며 한층 진화된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의식을 드높일 존재감에서 내가 확대된 존재가 바로 너라는 관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확대된 존재가 바로 너라는 관점에서 나의 생명은 분리 독립되어 있지 아니하고 대 생명과의 상호의존 속에서 존재하며 그것을 돕고 또 거기에 순응하며 동반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난 분기점으로 보면 지구에서 최초로 있는 일이면서 현상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전체로서의 나 그리고 개체로서의 나는 지구의 중심을 형성하는 축이라는 점에서 그 존재감은 의외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르고 있었던 너와 나는 둘이 아니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그것이 이 가을에 우리가 담아내야 할 가치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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