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4일부터 31일까지 화전도서관 앞 숙이공원에서는 다섯 번째를 맞는 ‘숙이나래문화제’가 열렸다. 남해여성회가 주최했고, 부제는 ‘박숙이, 장쌍가매 할머니와 함께하는 기억행동’이었다.
누군가는 우리의 역사를 ‘피와 눈물로 얼룩진 울음바다’라고 했다. 반만 년 역사에서 어느 핸들 시름없고 한숨 없던 때가 있었을까만, 일제 강점기만큼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웠던 때는 찾기 어렵다. 이제는 그 날도 76년이나 지나 체험으로 아는 이들은 많이 남지 않았다. 지어야 할 기억과 지워서는 안 될 기억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과연 ‘지성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거나 책을 읽을 때면 나는 늘 숙이공원 앞을 지나다녔다. 한 외로운 소녀가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 짙은 고동색 소녀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해 나는 눈길을 돌려야 했다.
비도 참 많이 내렸던 지난 8월. 나는 문화제가 있는 줄 알았고, 행사 때면 가리라 다짐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뒤늦게 찾아 군내 학생들이 노란 나비를 오려 써 놓은 글귀들을 읽었다.
박숙이(1922.4.6.-2016.12.6) 여사는 1939년 꽃다운 16살 나이로 한 살 많은 이종사촌 소녀 장쌍가매와 함께 두명의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중국 상해에서 ‘위안부’로 피 맺힌 삶을 살았다. 자살을 시도하고도 죽지 못해 치욕을 감내하다 해방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 모진 한과 고통을 털어놓지 못하고 살던 박숙이 여사는 2012년이 되어서야 236번째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해 일제의 간악한 실상을 알리고 사죄를 받기 위해 여위고 늙은 몸을 이끌고 떠도셨다. 끝내 사죄와 배상을 받지 못한 박숙이 여사는 2016년 12월 6일 밤 8시 30분 폐렴을 이기지 못하고 95세의 나이로 억울하고 한 많은 삶을 마치셨다. 추모누리 공원에 수목장으로 묻힌 여사께서는 지금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한다.
더욱 애통한 일은 함께 끌려갔던 장(張)쌍가매(1921-1945) 소녀다. 상해에서 박숙이 여사와 함께 6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소녀는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일본군에게 사살 당했다. 이름도 몰라 머리에 인 가매 두 개로만 남은 그 소녀는 지금 시신도 얼굴도 없다.
유튜브로 ‘숙이나래문화제’를 검색하니 군민들과 청소년실천단 학생들이 노란 나비에 쓴 추모와 다짐의 글들이 연이어져 눈물이 나왔다. “미래 세대에도 진실을 꼭 알리겠습니다.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힘내겠습니다.” 어린 여학생의 다짐처럼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나치를 끝까지 추적해 주륙(誅戮)한 유태인보다 우리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제는 두 분 모두 곱디고운 노란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이 나라의 하늘과 땅을 날아다니리라. 구릿빛 동상으로 남은 소녀와 예쁜 한복을 입은 어린 여학생. 그리고 두 소녀의 해후를 축복하는 나비 한 쌍.
슬픈 때라 그런지 유독 비가 많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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