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 가 임 종 욱
작 가 임 종 욱

남해는 섬이면서도 육지와 바로 붙어 있다. 그래서 전승되는 문화도 해양과 내륙의 것이 습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농경과 어업이 어우러진 남해는 어느 곳보다 보고 즐길 말한 전통 연희들이 풍성하다.

남해 사람들은 오랜 동안 지리적인 한계를 숙명처럼 안고 살아왔다. 작은 땅이라도 허투루 보지 않고 다랭이논을 일궈냈고, 죽방렴이나 석방렴 등 환경에 적응하면서 지혜를 모아 생존 터전을 지켜왔다. 허덕이기보다는 부딪치면서 땅과 바다가 주는 난관을 선물로 바꿔놓았다.

그 뿐인가. 고된 노동의 한 모퉁이에서 힘을 돋우거나 흥을 부추기는 놀이들을 꾸리는 데도 남해사람들은 달인이다. 기쁨이라면 이웃과 나누고 슬플 때는 덜어주면서 삶의 순간들을 축원의 노래로 절구질했다.

그렇게 지금도 이어지는 남해의 전통 연희들. 그 가운데 남면 선구마을에서 베풀던 ‘선구줄끗기’가 있다.

‘줄끗기’는 일종의 줄다리기 놀이다. 새끼를 굵게 꼬고 묶어 ‘고’를 만들고, 사람들은 편을 나눠 한 바탕 힘을 겨룬다. 부정 타지 말라고, 고를 타고 지휘하는 사람인 ‘편장’은 마을에서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총각이거나 장정을 골라 세운다.

이 행사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필요해 특별히 정월 대보름날 주로 벌어진다. 마을 바닷가에 암고와 숫고를 정해 맞대면서 힘을 겨룬다.

이 싸움은 이겨서 좋고 지면 서운한 그런 경쟁이 아니다. 

마을의 화합과 친목을 다지면서 한 해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겨루기가 끝나면 다들 얼싸 모여 달집을 태우면서 덕담을 나누고 수고를 위로한다.

선구줄끗기 / 아크릴화 / 60X45cm
선구줄끗기 / 아크릴화 / 60X45cm

하늘을 덮을 듯 휘날리는 수많은 깃발과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함성소리, 일사분란하게 밀고 당기는 어우러짐은 세상과 우리가 한 몸이고 공동체임을 모두에게 일깨운다.

나는 아직 이 위풍당당한 싸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행사가 이뤄지지 못했고, 이전에는 찾아볼 기회가 없었다. 때란 것이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 것을 실감한다.

얼마 전 ‘선구줄끗기보존회’를 찾을 일이 있어 회장님과 국장님을 만났는데, 우리 군에서는 유일하게 경남무형문화제(26호)로 지정된 자랑스런 이 연희가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 번 판을 벌이려면 수백 명이 모여야 하는데, 마을 인구가 줄고 연령대가 높아지다 보니 인원이 턱 없이 부족하단다. 주변 마을에서 십시일반 도와주기는 하지만, 숙련된 사람은 적고 젊은 인력이 보충되지 않으니 이러다 제 풀에 지쳐 포기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했다. 부모가 있어 내가 있듯이 옛 것을 본받아야 새로운 것도 나온다. 남해를 더욱 아름답게, 갸륵하게 만드는 것들. 이런 것들이 가뭇없이 사라진다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으로 남해를 알릴까?

다시 한 번 편장의 외침 아래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내어 줄끗기의 존재를 알리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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