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봉 군
<약   력>
 - 창선면 장포 출신
 - 서울대 졸업,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 이메일 useok923@naver.com

지난 7월 2일 유엔 무역개발이사회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임을 선포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요, 3050클럽의 7대 강국이다. 인구 5천만 이상에 GDP 3만 달러가 넘는 나라 가운데 7위라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이룬 이 눈부신 결실은 이 땅에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세운 초대 대통령, 산업화의 기치를 내걸고 진두지휘하여 ‘한강의 기적’을 성취케 한 새마을 대통령, 민주화에 목숨을 걸었던 민주화 대통령들의 공로와 온 국민의 눈물겨운 분투가 합력하여 얻은 경이로운 성과다. 

최근에 이 같은 통합의 성과에 재를 뿌리며, 국민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일부 철없는 사람들의 언행은 선배들의 업적을 폄훼하며 대한민국의 행진에 브레이크 거는 배은망덕한 죄악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 140개국 가운데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아울러 달성한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정신이 긍정적인 개인과 국민은 흥하고, 부정적인 개인과 국민은 망한다. 

우리 남해 사람들은 개인적 성취는 물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공헌해 왔다. 남해 사람 최초로 국회의장을 지낸 박희태 선배님, 남해 사람 최초로 서울대학교에 총수석으로 입학했던 과학자 장호남 카이스트 교수, 거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의 하윤수 회장. 고향의 영예를 빛내며 국가 발전에 기여한 대표적인 인사다. 이 밖에 문화계·예체능계·교육계·경제계·정계·군대 등 도처에 남해 출신의 현저한 인재들이 포진해 있는 것은 우리 향우들의 크나큰 자랑이다. 

사람의 성공은 꼭 고관대작이나 권력자, 큰 부자나 유명인이 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다짐하며 열심히 살고있는 남해인 모두가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특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소외되고 가난하며 서러운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는 남해 사람은 복되다. 오랜 선행이 드러나서 LG 의인상을 받은 빵가게 김쌍식 대표는 복된 봉사자다. 

우리 남해 사람들이 이렇듯이 훌륭하게 살게 된 것은 우리 고장 특유의 교육열 덕분이다. 1948년에 세워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 극소수의 재산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너나없이 궁핍에 시달렸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터로 나가셨다. 산비탈과 골짜기에 멧밭과 다랑논을 일구어 손발에 피가 맺히도록 중노동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혹은 망망한 바다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며 억척스럽게 뱃길을 터야 하셨던 남해의 아버지와 형님들의 생애는 실로 전투와도 같은 모험이었다. 그런 피어린 돈으로 우리는 공부했다.

남해의 교육을 최일선에서 견인하신 분은 부모님과 함께 선생님들이셨다. 부득이 필자의 은사님들의 면면을 회고하면서 남해의 교육 이야기를 풀어 보기로 한다. 
필자는 진동초등학교 제1회 졸업생이다. 1948년에 개교는 하였는데, 아직 교사(校舍)가 건축되지 않았다. 우리는 1년 동안 집에서 농삿일을 거들면서 지내었으니,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5년만 다니고 졸업했다. 동기생은 12명이었다. 나라가 가난해서 교과서는 교사용만 배달되었다. 4학년 때 문재근 선생님은 교과서 내용을 등사하시고, 사모님은 책을 실로 꿰매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필자 일생의 정신사를 지배할 위대한 교훈을 주신 분은 박찬동 교장 선생님이셨다. 우리 학교 두 번째 교장으로 오신 박 선생님께서는 처음으로 교훈을 제정하셨다. ‘나의 힘으로 남을 위하여 힘껏 일하자’였다. 어린 우리에게 일찍부터 이타주의 정신을 깨우치려 하신 것이다. 박 교장 선생님은 월요일 교정 조회 때마다 사람이 자기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며,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셨고, 어린 우리는 감동 어린 마음으로 그 말씀을 마음 깊이 아로새겼다 필자가 40여 년의 교단생활을 하며, 학문을 하는 틈틈이 어려운 제자들과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고통받은 이들을 구제하는 초원봉사회(장학회) 일에 각별히 정성을 쏟을 수 있었던 것도 박찬동 교장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의 유익만을 탐하는 원색적 이기주의자다. 좋은 정치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과 남의 이익의 균형을 잡게 하는 계발적 이기자가 되게 한다. 그런데, 좋은 교육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출천의 봉사자가 되게 한다. 박 교장 선생님은 자기희생의 윤리를 가르친 참 스승이셨다. 필자는 해양초등학교장으로 계시면서 강습받으러 오신 박 교장 선생님을 서울에서 뵈었다. 그때 스승님은 필자가 엮어낸 한국 페스탈로치 수기집 『길을 밝히는 사람들』(1982)을 보시고 대견해하셨다. 필자는 그 책에 남해의 스승 박찬동, 문신수 선생님의 글을 실었다. 

박찬동 교장 선생님 이야기가 아직 남았다. 6학년 때의 일이다. 사택에서 교장 선생님이 부르신다는 전갈이 왔다. 산 너머 마을에 사시는 박 선생님이 숙직인데 아직 안 오셨으니 혼자 가서 모셔오라 하셨다. 필자 홀로 산길을 더위잡기 시작했을 때, 해는 지고 있었다. 다락같이 높은 산길을 필자는 단숨에 뛰어넘어야 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박 선생님 댁에 당도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랴, 박 선생님은 남해읍에 볼일이 있어 출타 중이셨다. 필자는 다시 아아로운 산길을 혼자서 올라와야 했다. 초저녁 눈썹달마저 서러워 보이는 어두운 산길을 걷다가 뛰다가 넘어졌다 일어나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무섬증이 엄습하는 순간마다 ‘태정태세문단세예,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가나다라마바사’ 등을 외면서 굽이굽이 산길을 근 두 시간에 걸쳐서 다녀왔다. 

박 교장 선생님께 혼자 오게 된 사정을 보고드렸더니, “애썼다. 무섭지 않더냐?”는 정도의 말씀만 하셨다. 왜 혼자 다녀오라 하셨느냐에 대한 일언반구의 보충 설명도 덧붙이지 않으셨다. 

요즈음 각급 학교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학교 교육이 위기에 처하였다는 것을 실감한다. 교권이 무너져, 문제 학생들을 선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100년 전에 간디가 개탄하였듯이, 학교 교육이 감당해야 할 몫은 엄청난데, 국가는 교육을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기에 여념이 없고, 사회는 교육의 본질보다 기능적 수월성만을 요구한다. 

초불확실성의 21세기 교육은 제4차 산업혁명의 기능적 부문에 대한 집중적 요구에 휘둘리고 있다. 소프트웨어 교육은 물론 급선무의 과제다. 그러나 간디가 지적한 원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상업, 인격 없는 과학, 근로 없는 재산,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 등의 모순을 교사들이 어찌 외면할 수가 있겠는가. 

교장실과 교무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걸핏하면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폭력 학부모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 적국 일본의 어느 수상 이야기다. 총리의 아들이 담임교사 훈도를 거역하고 말썽을 부렸다. 고심하던 총리는 담임교사를 집으로 초대했다. 대문 안에 들어선 선생님 앞에 총리가 무릎을 꿇었다. 교육은 이렇게 하는 법이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온갖 상장을 다 주신 후에 박 교장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시더니, 밤에 혼자 박 선생님 댁에 다녀온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으셨다. “내성적이고 심약해 보이는 너에게 담력을 길러 주려고 그런 것이니 섭섭해 하지 말아라.”고 하시며 어깨를 힘껏 잡아 주셨다. 그런 스승님 덕에 필자는 한때 ‘명강의 교수’로 포상을 받기도 한 대범한 교육자가 되었다.

필자는 지금 인생 저물녘에 서서 풀뿌리와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가며 주린 배를 채우시면서도 자식 공부시키는 일에 목숨을 거셨던 남해 땅 우리 부모님들의 은혜를 다시금 생각한다. 심야에 호롱불을 켜고 진학 지도를 하셨던 선생님들의 노고를 잊지 못한다. 

음수사원(飮水思源) 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마시면서 그 근원의 고마움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번영된 오늘을 살면서, 이 나라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셨던 부모님과 선배님들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 인재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이 소중한 자원을 풍요롭게 하는 최일선에 교육자들이 있다. 한 사람의 교사는 한 학생과 국가의 운명까지 바꿔 놓을 수 있다. 

교사를 ‘선생질한다’고 낮춰 보다가는 나라를 망친다. 교사의 중요성은 트럼프식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던지는 경종이다. 교육은 교사를 중심으로 하되, 학교·학부모·사회가 유기적 연대감으로 한몸처럼 움직여야 성공한다. 

국가와 교육부, 교육청은 거대 담론만 제시하며 조력자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한다.

우리 남해 사람들은 교육으로 일어섰다. 후손들도 남해 특유의 교육혼으로 지성껏 가르치자. 
남해 교육 만세. 자유 대한민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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