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도서관 전시장에서
남해도서관 전시장에서
과테말라에서 현지인 가족들과 함께
과테말라에서 현지인 가족들과 함께
KOICA 도미니카 공화국 근무 시절 마을 작은 도서관 개관식 때
KOICA 도미니카 공화국 근무 시절 마을 작은 도서관 개관식 때

남해로 들어와 인생 2막을 여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오지만, 그들이 남해에 안착하도록 돕고 관심을 가지는 일은 남해 사람들의 몫이다. 입도(入島)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지만, 떠나기도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공평해서 한쪽 문을 닫으면 한쪽 문을 열어준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남해-여수 해저터널 예타 통과가 알려진 지난 주 금요일 서면 남상마을로 귀촌한 오선태 (61세) 씨를 만났다. 오선태 씨는 지난달 24일(화)부터 이달 3일(금) 오늘까지 남해도서관에서 소박하지만 알찬 작품 전시회를 열고있다.

우연히 도서관에 들렸다가 전시회를 보고 연락을 해 찾아갔다.

오선태 씨가 둥지를 튼 집은 남상마을 길가에서 아래로 내려가 여수 쪽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있다. 원래 농가였던 것을 구입해 내부만 손을 봐 살고 있단다. 남해에 온 지는 1년하고도 2달쯤 되었다.

농가 밖 공터에 데크를 깔아 만든 원두막(?)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수염을 자연스럽게 기르고 머리 손질도 적당히 한 그의 모습은 첫 눈에 봐도 자연인 그대로였다.

먼저 어떤 계기로 남해에 들어왔는지 물었다.

“22년 동안 공직에 있었어요. 해마다 쳇바퀴 돌 듯 이어지는 삶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미련 없이 그만두고 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죠.”

들어보니 타고난 방랑기를 억누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고향이 경기도 의정부 시라서 바닷가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남상마을에 왔는데, 딱 보니 내 뼈를 묻을 곳이란 느낌이 왔어요. 뒤도 안 돌아보고 농가를 샀습니다.”

세계를 마당삼아 배낭 메고 떠돌다
퇴직한 뒤 바로 남해로 온 것은 아니다. 그는 무대를 세계로 넓혔다. 기분이 내키면 바로 짐을 싸 비행기에 올랐다.

“남들이 다 아는 관광지를 찾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들이 잘 모르는 곳이 끌렸어요. 며칠이 아니라 적어도 서너 달 주민들과 부대끼며 골목과 산기슭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죠.”

그의 발길은 유럽부터 아시아, 중남미까지 두루 미쳤다.

그러다가 뭔가 뜻 깊은 일을 하고 싶어 KOICA(한국국제협력단) 문을 두드렸다. 낙후한 지역을 찾아 우리의 힘으로 무상 원조를 하는 조직이다. 거기서 배정받은 곳이 중남미 국가 도미니카 공화국이었다. 봉사 활동이니 만큼 급여는 없고, 식대와 주거비, 사업비 정도가 지원된단다.

“2013년 10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2년을 머물렀습니다. 제가 한 사업은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짓는 일이었죠. 큰일은 아니었지만, 정말 보람 넘치던 순간이었습니다.”

귀국한 뒤 다시 신발 끈을 묶고 떠난 곳도 중남미 과테말라였다. 이곳 중앙 고지대 해발 1562미터 지점에 아티틀란 호수(Lago de Atitlán)가 있는데, 그곳에서 인디언 마을 사람들과 반년을 함께 지냈다. 주변에는 아직도 활동하는 화산이 있고, 수심만 320미터에 넓이가 127.7제곱미터인 광대한 호수다. 오선태 씨가 도서관에 전시했던 그림의 대부분도 여기서 그린 작품들이다. 그는 목원대 회화과를 나왔고, 경기대 조형대학원에서 미술경영을 전공했다.

오선태, 서면 남상리의 저녁노을 인상, 아크릴화, 10호F
오선태, 서면 남상리의 저녁노을 인상, 아크릴화, 10호F

이제는 남해가 제 고향이죠

남해에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1년 조금 넘은 처지지만, ‘왜 이렇게 좋은 데를 두고 도시에 사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남상마을은 살기가 너무 좋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다를 보고 앉았노라면 잡념들이 모두 바닷바람에 날려가죠. 친구들도 찾아오면 입을 다물지 못해요. 퇴직하면 이곳으로 오라고 몇 놈 꼬시는(?) 중인데, 곧 이웃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마을 이화종 이장님은 취미가 마라톤인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아 이래서 이웃이구나 하고 느낀단다.

생활하기는 불편하지 않냐 물으니, 연금이 있어 크게 부족하진 않단다. “적게 벌어 아껴 쓰면, 그게 부자죠” 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남해에서 하는 일은 그림 그리고, 이따금 읍에 나가 식료품도 사고 도서관에 들려 책을 빌려오는 게 전부란다. 앞으로는 마을 일뿐만 아니라 군내에서도 도움이 필요하면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당장의 목표는 무엇인지 물었다.

“소설을 쓰고 싶어요. 전부터 시는 썼는데, 요즘에는 소설이 당기네요. 습작도 몇 편 써 봤습니다.”

인연은 멀리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기자가 9년 전 김만중문학상을 수상해 남해로 내려온 소설가라 소개하니, 당장 자기 작품을 읽어달라는 부탁이 돌아왔다.

문화 다양성이란 건물 짓고 사업 벌인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적 소양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때 성큼 다가온다. 그림을 그리고, 시와 소설을 쓰는 오선태 작가. 이런 사람이 늘어날 때 남해의 문화는 더욱 기름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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