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 연설천면장
박 정 연
설천면장

햇빛이 강아지처럼 뒹굴다 가곤 했다, / 구름이 항아리 속을 기웃거리다 가곤 했다. / (중략 …) / 빨랫줄에 걸려 있던 구름들이 저의 옷들을 걷어입고 떠나가고 / 오후 세 시를 지나 / 저녁 여섯 시의 골목을 지나 / 태양이 담벼락에 걸려 있던 햇빛들마저 / 모두 거두어 가버린 어스름 저녁 / 그 집은 어디로 갔을까 / 지붕은, 굴뚝은, 다락방에 모여 쑥덕거리던 별들과 / 어머니의 슬픔이 묻은 부엌은 / 흘러 어느 하늘을 어루만지고 있을까 /  뒷짐을 지고 할머니가 걸어간 달 속에도 장독대가 있었다 /
달빛에 그리움들이 발효되어 내려올 때마다 / 장맛 모두 퍼가고 남은 빈 장독처럼 / 웅웅 내 몸의 적막이 울었다. 
- 권대웅 詩<장독대가 있던 집> 

연보라, 진분홍의 화려한 꽃너울로 여름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목(木)백일홍도 가을 장맛비에 고개를 떨구고 가늘어진 숨결처럼 표정이 흐려지고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밝음, 상쾌함, 여유, 행복감으로 열어봅니다. 비가 내리고 나니 어느새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코로나와 더불어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지난여름을 잘 이겨낸 우리에게 자연은 잘하고 있다는 응원으로 어깨를 토닥여 주는 듯 또 다른 계절로 우리를 위로해 줍니다.

곡식이 자라고 익어가는 모습, 계절마다 다른 표정으로 피어나는 꽃들과 자연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는 남해(南海)의 뜨거운 태양을 마주할 때면 행복이 손에 잡힐 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립니다. 이처럼 자연은 자신만의 모습과 표정, 향기로 소리 없이 다가와 잔잔한 감동으로 우리에게 선물을 안겨 줍니다. 자연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내세워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연은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진정한 스승인지도 모릅니다. 

지난해 느닷없이 찾아온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 마음의 한 구석이 조금은 무너져 있기에 우리는 더욱 소중 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서툴게 엮어가는 일상 속에서도 최고의 나날로 완성하기 위하여 묵묵히 자신만의 할일을 챙기며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됩니다. 그 동안 정성들여 돌보지 않았던 마음의 구석 하나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돌보는 것, 그것은 우리를 지켜가는 힘입니다. 

정성껏 준비한 한 끼 식사, 누군가와 나누는 소소한 대화조차도 진정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정성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충만해지고 빛날 것입니다. 

하프 달

이번에 소개해 드릴 소품은 빛바랜 사진 속에 멈춰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든 요정(妖精), 인형(half doll)입니다.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가 입안에서 부스러질 때 퍼지는 향과 맛에 이끌려 잠재의식 속에 갇혀있던 생각의 흐름을 따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듯, 어릴 적 빛바랜 사진 속 저를 지켜준 요정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장미꽃과 리본으로 장식된 타원형의 앤틱 액자를 배경으로 자태고운 하프돌(half doll)이 앉아 있습니다. 

액자는 분홍색 원단에 스팽글과 상아빛 구슬로 은은하고 우아하게, 가장자리에는 장미꽃 넝쿨의 프렌치레이스로 사랑스럽게 표현했습니다. 

하프돌 레이디의 패티코트는 실크 소재로 끝단엔 프렌치레이스를 덧대어 꼼꼼하게 홈질을 하고, 드레스는 폭넓은 레이스를 주름잡아 실크리본으로 여미고 나니 저를 지켜줄 사랑스런 요정이 탄생되었습니다. 

요정은 아기의 첫 웃음이 조각조각 흩어져 탄생되었고, 그 요정은 파수꾼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무겁게 여겨지는 이 순간, 여러분을 지켜주는 요정은 무엇인가요?

※ 하프 돌(half doll) 상반신이 도자기로 된 인형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07.10. ~ 1922.11.18.)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수필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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