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희영 씨
직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희영 씨

인구가 대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농촌 젊은 층들의 결혼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사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고자 우리나라 밖에서 결혼 상대를 알아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많은 외국 여성들이 한국 남성과 결혼해 들어와 정착했다. 이들은 지역 사회의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했고, 이제는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낯선 풍경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그들을 ‘여성결혼이민자’라 부른다.

남해에도 여러 나라에서 온 여성들이 오순도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남해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혜복 팀장에 따르면 남해에는 여성결혼이민자가 250여 분 된다고 한다. 베트남과 중국, 일본, 캄보디아,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국적도 다양하다.

이분들의 남해 생활은 어떨까? 낯선 타국에 와서 가족들과 떨어진 채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리는 일이 그리 수월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그런 분 들 중 현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로 일하는 한희영(28세, 본명 응우엔 티 히엔) 씨를 만나보았다.

그리운 고향, 더 소중한 남해
한희영 씨가 남해에 온 것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인 베트남 하이퐁(Haiphong, 海防) 시에서 살던 한희영 씨는 남편이 될 이현옥 씨를 만나 남해로 들어왔다. 이현옥 씨는 상주면 벽련마을에서 낚시업과 통발 사업을 운영 중이다. 언제라도 연락(☎010-5525-6045)을 주면 배를 띄워 강태공 풍류를 즐길 수 있단다.

현재 그녀는 시부모와 남편, 그리고 귀여운 딸 이유나(7살) 양과 함께 살고 있다. 남해에 들어와 우리나라 국적도 취득해 지금은 어엿한 한국 사람이다. 또 통번역사 자격증도 따 작년 3월부터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한희영 씨의 고향 하이퐁 시는 하노이 동쪽 해안가에 있는 도시로, 인구가 170만 명(2004년)이나 된다. 아름다운 관광지 하롱베이를 안고 있는 전통 깊은 명승지다.

한희영 씨는 고향에서 중학교까지 나왔지만, 지금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졸업하면 대학에도 들어가 전문직에 종사하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시부모님과 남편도 격려해주어 든든한 후원자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센터에서 그녀는 결혼이민자들이 방문하면 통역도 해주고 서류 작성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본인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지만, 많은 결혼이민자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불편을 겪는다. 이들에게 적으나마 도움을 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남해의 결혼이민자 가운데 베트남 여성이 가장 많단다.

6년을 살았으니 남해에서 인상 깊은 곳이 어딘지 물었다. 그러자 그렇게 많은 곳을 가보지는 못했단다. 예전에는 차도 없고 말도 막혀 못 다녔고, 지금은 직장 때문에 가보기 어렵단다.

그래도 독일마을과 노량 앞바다, 미국마을, 상주해수욕장 정도는 가 봤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면서 고향에서 친구나 가족이 오면 꼭 데려갈 작정이란다. 고향에는 남편, 딸과 한 번, 혼자 한 번 다녀왔지만, 가족들은 아직 남해에 와본 적이 없어 예쁜 경치를 사진으로만 전했단다.

가족 사진. 왼쪽부터 남편 이현옥 씨와 딸 이유나 양, 한희영 씨
가족 사진. 왼쪽부터 남편 이현옥 씨와 딸 이유나 양, 한희영 씨
고향 하이퐁 시의 가족들
고향 하이퐁 시의 가족들
남해군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들과 다정한 한때
남해군 건강가정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들과 다정한 한때
한희영 씨의 고향 하이퐁 시 풍경
한희영 씨의 고향 하이퐁 시 풍경

서툴러도 나는 영원한 남해사람
남해의 좋은 점에 대해 물었다. 한희영 씨는 활짝 웃으면서 너무 많아 헤아리기도 힘들단다. 공기가 맑고 습기가 없어 시원한 데다 교통도 편하고(지금은 자가운전자다), 무엇보다 치안이 잘 유지되어 무서운 일이 없다며 미소 지었다. 또 다들 부지런하고 친절해 한 가족 같은 분위기도 손꼽았다.

불편한 점은 무엇이냐 했더니, 친구가 많지 않아 외로운 게 흠이란다. 특히 벽련마을에는 결혼이민자가 혼자뿐이라 적적할 때도 있단다. 모국어가 그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는데, 이제는 넘어섰다. 또 음식이 색달라 입맛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서 회라든가 미역은 지금도 잘 먹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웬만한 음식은 거뜬히 소화해 저녁이나 휴일 때 식구들과 함께 먹는 식사를 항상 기다린다고 알려주었다.

남해 말고 다른 곳은 어디를 가 봤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거의 다녀본 곳이 없단다. 서울은 통번역사 시험을 보려고 사흘 지내봤고, 귀화 시험은 창원에서 봤다고 한다. 비교적 자주 가는 곳은 부산 정도란다. 주부와 직장인으로 살아가니 관광이나 여행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결혼이민자들을 대신해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다들 상냥하고 도움을 주긴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이해심을 가지고 배려해 줬으면 하는 희망을 풀어놓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해는 타향도 외국도 아니고 평생 살 고향이다. 먼 곳의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좋다는 속담도 있다. 이제는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정을 나눌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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