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 종 욱
작가 임 종 욱

남해의 들판에 나가보면 머지않아 다가올 가을걷이를 기다리며 익어가는 나락들을 볼 수 있다. 추석이 불쑥 고개를 내밀 때 수확한다지만, 제법 머리를 숙이며 계절의 변화를 인정한다. 농부의 손길이 닿아야 곡식들은 구실을 얻는다 해도 그들은 사람의 바람이나 욕심에 기대 자신의 생명을 가꾸지는 않는다. 때가 되면 저절로 여물고, 땅에 인사를 올린다.

지금 살고 있는 읍 셋집 마당에는 제법 키가 큰 감나무 한 그루가 푸른 잎새를 피우고 그림자를 드리우며 지붕을 넘어섰다.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그게 감나무인 줄도 몰랐다. 그러다 비가 제법 세차게 몰아치던 날 아침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설익은 감들을 보면서 하늘을 올려보게 되었다.

반짝이는 햇살이 산란했고, 넓은 감잎 사이로 파릇한 아기 감들이 꼼지락거렸다. 잎이나 감이나 모두 푸르러 분간하기 어려워도 아기 감들은 가지마다 작은 몸을 키워갔다. 달린 감보다 떨어진 감이 더 많았다. 성숙은 그렇게 힘겨운 일이다.

고현에서 살 때 들판을 가로질러 마을길을 걷다보면 쉽게 눈에 띄는 것이 감나무였다. 봄과 여름 때는 쉬 본색을 드러내지 않던 것들이 가을에 접어들자 어느 새 노랗게 익었고, 붉은 홍시가 되어 가지를 늘어뜨렸다. 주인이 떠난 빈 집에서도 감나무는 주인이 심어놓고 거름을 준 은공을 잊지 않고 주인을 위한 간식거리를 장만한다. 그 공치사 없는 무보상심(無報償心)이 부럽다.

묘하게도 잘 익은 감들은 내 손길이 닿는 곳을 벗어났다. 장대를 휘두르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딸 만한 지점에, 때로는 모여서 때로는 저만치 홀로 탐식(貪食)의 손길을 저어한다.

창 안에서 본 고현면 풍경 / 아크릴화 / 40X52cm
창 안에서 본 고현면 풍경 / 아크릴화 / 40X52cm

푸르고 푸른 가을 하늘과 선홍빛으로 합창하는 붉은 알들의 대비는 내가 저런 자연의 일부임을 기뻐하게 만든다.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하면서 사람의 인위를 털어내고 참으로 나가는 이치를 배우라 했고, 부처도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 해서 어디를 가든 주인 노릇을 할 것이지 억지로 참됨에 얽매이지 말라 깨우쳤다. 내 스스로 당당하면 조종에 흔들리는 목각인형은 되지 않는다고 일렀다. 손가락은 달라도 다들 달을 가리킨다.

한 알이라도 손에 쥘까 싶어 눈에 보이는 조약돌을 들어 감나무로 던졌다. 어쩌면 그리 용하게도 돌은 감을 피해 가는지. 나의 욕망을 비웃 듯 돌은 자신의 무게와 부피에 맞는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먼지 묻은 손을 털면서 한번 씩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감나무 아래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릴 만큼의 도인(道人)은 못 되었다.

틀 안에 들어가 봐야 틀 밖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틀 안에 들어가니 틀 안이 보이긴 하지만, 그 틀이 너무나 갑갑하다. 그러다 틀 밖으로 흘깃 눈길을 주어본다. 그러자 들판이 보였고, 무람없이 익어가는 나락들과 감 알들이 보였다.

내 시선이 있어야만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것은 ‘양자역학’적인 미학(美學)이다. 내 시선이 없더라도 자연은 그렇게 늘 아름답다. 무덥고 살벌해도 가을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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