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1808년 프랑스 정치인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로 해석된다.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기원전 202년)을 치르는 동안 로마 공화정 최고위직 집정관 13명이 전사하고, 1440년 헨리 6세에 의해 설립된 세계적 사학 명문 영국 ‘이튼 칼리지’(Eton College) 교내 운동장 건물에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전장에서 죽어간 1천 900여 명에 달하는 이튼 칼리지 출신의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두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에는 142명의 미합중국 장군 아들이 참전하여 3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어떤가? 존경하는 훌륭한 지도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청문회나 대선 지방 선거과정에서 들어나는 논문 표절, 탈세, 부동산 투기, 병역 기피, 불법 증여 등 종류도 많고 다양해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쉽지 않고 입에 담기 민망하다. 오히려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의미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반대말인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라는 용어가 더 어울린다. 

그렇지만 너무 낙담하거나 실망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많은 미담(美談)이 들려온다. “돈쭐 내러가자” ‘돈’+‘혼쭐’의 변형된 표현으로, 신조어다. ‘혼쭐이 나다’ 라는 원래 의미와는 달리, 정의로운 일 등을 함으로써 타의 귀감이 된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자는 역설적 의미로 최근에는 빈번하게 사용된다.

홀로 딸을 키우고 있는 한부모 가장 아빠에게 대가 없이 피자를 선물한 피자집 점주의 사연이 알려졌다. 지난 12일 SBS 보도에 따르면 7세 딸을 홀로 키우는 A씨는 코로나로 직장을 잃고 피부병을 앓고 있는 어린 딸로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딸을 봐줄 사람도 없어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7번째 딸의 생일날 수중에 있는 돈은 571원뿐이었다. 몇 차례 주문했던 피자 가게에 “7세 딸을 혼자 키우는데 당장 돈이 없어 20일 기초생활비 받는 날 꼭 드린다고” 부탁했는데 조금 후 도착한 피자 상자에는 “부담 갖지 마시고! 또, 따님이 피자 먹고 싶다고 하면 연락 주세요”라고 큼지막한 글씨와 전표에는 ‘결제 완료’의 따뜻한 글귀를 남긴 점주는 32세 청년 황진성씨였다. 황씨의 선행에 포털사이트 해당 지점에 대한 별점 만점이 쇄도하고 있고. “황씨 가게 ‘돈쭐’ 내러 가자”며 해당 지점 주소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 지역 남해의 행복한 빵쟁이 김쌍식 제빵사도 자신을 희생하고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LG의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난 주 지역신문에서 미담을 소개 했지만 이런 기분좋은 얘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활력소로 회자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번 더 소개하고자 한다. 

남해읍 경찰서 옆에서 행복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제빵사 김쌍식 씨는 12개 장애인 복지단체에 10년째 빵을 기부하고 있었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1년 3개월째 빵을 준비해 놓으면 아침 등굣길 배고픈 아이들이나 빵이 좋아 먹고 싶은 학생 등 초·중·고등학교 학생 할 것 없이 하나씩 빵을 갖고 간다고 한다. 매일 손수 만든 신선한 빵 100개정도의 나눔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좋은 일을 하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빵값만 2천만원이 넘는 많은 기부를 매년 해 온 것이다. 학창시절 매우 가난했던 김씨는 ‘배고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빵을 나누는 것이 평생 소원중 하나고 좋아서 하고 있는 일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감사해 하면서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잘 알고 있겠지만 LG의인상은 우리 사회의 의로운 행동으로 사회적 큰 반향과 공감을 일으킨 사람이나 남다른 선행을 통해 사회의 귀감이 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이바지한 사람 등에게 주어진다. 코로나로 지치고 정치얘기가 일상이 된, 즐거운 소식 듣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이런 기분 좋은 소식은 세상이 아직 살만한 게아닐까 하는 조그만 위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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