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 연설천면장
박 정 연
설천면장

가을 절기가 시작되는 입추(立秋)를 맞이하고 나니 8월의 햇살이 견딜 수 있을 만큼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정약용(1762~1836년) 선생은 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일 <소서팔사(消暑八事)>에서 연못에 핀 연꽃 감상 하기,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달밤에 물에 발 담그기, 비오는 날 시 짓기 등으로 지혜롭게 더위를 식혔다고 하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해가 기울고 나니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모습과 향기와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맘때쯤에는 해질녘 울려 퍼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더욱 애절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생활 모습이 많이 변해가고 있는 요즘, 힘겹게 버티고 있는 마음의 무게가 느껴질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시간의 의미와 가치를 천천히 되새기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기입니다. 또한, 자신의 삶에 마음 챙김을 끌어들이는 작은 마법같은 경험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여름, 우리의 가슴 그리고 눈과 귀가 기억하는 추억의 감동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소리인지 자연의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모습인지‥‥.
일상에서 감동을 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걷는 곳에 따라 다르게 와 닿는 자연의 향기를 음미하며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마주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일 느슨한 마음으로. 나뭇가지에 그리고 꽃송이에 잠시 쉬어가는 잠자리의 여유도 즐기며, 공기를 가볍게 휘젓고 지나가는 새소리에도 가슴으로 기억하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사막을 여행하던 여행객이 별을 이불처럼 덮고 잠들기 위해 침낭을 펴고 누웠더니, 침낭 아래서 사각거리는 모래소리가 ‘모래알이 서로의 품을 파고드는 소리’라고 묘사했던 여행객의 사적인 감동의 순간을 음미해 봅니다. 행복에는 커트라인(Cut Line)이 없다고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끼는 행복감의 표현처럼, 

‘막 구운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것을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접어놓은 속옷이 가지런히 쌓여 있는 것을 보는 것’‥‥
손꼽아 가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정도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순간들이지만, 삶의 의미를 잠깐 놓치고 살아가는 이 순간, 행복의 이름으로 따뜻한 감동을 안겨주는 모습들입니다. 

자연이 아름답지 않은 계절은 없습니다. 8월의 태양은 초록과 어우러져 자연을 특별한 아름다움과 건강한 모습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느릿느릿 자라던 곡식은 어느덧 익어가고, 시새워하면서도 든든한 친구처럼 서로의 어깨를 기대 자태를 뽐내는 꽃들과 이미 가을을 품고 있는 짙푸른 열매에도. 

이처럼 계절이 또 다른 계절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마다 자연은 색다른 모습으로 매력적인 선물을 안겨 줍니다.  

테이블 매트
테이블 매트

저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8월의 더위를 접하면서, 아찔한 태양 아래 시원함을 더해 줄 푸른 바다를 연상하며 테이블 매트를 만들었습니다. 

하얀 린넨 위에 여름의 색깔 코발트블루로 한 송이 꽃을 수놓았습니다. 꽃모양의 중앙부분은 새틴스티치로 촘촘하게 채우고, 프렌치 넛으로 꽃씨를, 줄기는 아웃라인 스티치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백은 심심하지 않게 하늘색을 품은 스카이블루의 체인스티치로 채웠습니다. 

이 소품은 적당한 여백과 시원한 색감이 더해진 간결한 무늬로 테이블 위의 절제된 품격을 표현하기 위해 자수를 최소한으로 하였습니다. 가장자리에는 비슷한 질감의 얇고 사랑스런 프렌치 레이스를 덧대어 마무리를 하고나니 어느 여행지의 추억 한 조각을 담아 놓은 듯 마음을 설레게 하는 테이블 매트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 여름, 여러분의 가슴이 기억하는 추억의 감동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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