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국땅에서 일손을 나누는 억척스런 동행
낯선 이국땅에서 일손을 나누는 억척스런 동행
  • 임종욱 인턴기자
  • 승인 2021.08.13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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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외국인에게 듣는다 (2) 이주노동자
농부맛집 상호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이창남 사장과 이주노동자들. 왼쪽부터 프라파폰 씨와 분추, 분라다 부부다
농부맛집 상호를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는 이창남 사장과 이주노동자들. 왼쪽부터 프라파폰 씨와 분추, 분라다 부부다
태국인 노동자들이 생산한 ‘갈아만든 유자청’. 정성까지 담겨 전국으로 유통된다
태국인 노동자들이 생산한 ‘갈아만든 유자청’. 정성까지 담겨 전국으로 유통된다

남해의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구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노령화에 따라 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인력도 귀해졌다. 농어촌의 노동이란 것이 대개 고달프고 힘들면서 쉴 틈이 드물다. 높아가는 인건비를 감당하면서 사람을 쓰는 일도 한계를 넘어섰다.

이런 가운데 부족한 일손을 덜어주고, 품이 많이 들면서 고된 작업들을 불평 없이 꿋꿋이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로서는 상당히 저렴한 임금으로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노동력을 얻을 수 있으니,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고맙고 든든한 지원군일 수밖에 없다.

농사 짓는 논밭, 고기를 잡거나 양식을 하는 바닷가, 공장과 공사장을 지나다보면 어렵지 않게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세계 곳곳, 특히 동남아 일대에서 와 우리의 부족한 노동 시장을 메워주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주노동자들이다.

남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몇 명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얼추 50여 명 안팎일 듯하다. 대개 이들은 낮은 임금으로 때를 가리지 않고 궂은일을 도맡아 감당한다.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낯선 이국땅을 찾은 사람들이지만, 이들 역시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남해에서 함께 살아야 할 가족들이다.

노동 인구 감소에 따라 앞으로 더욱 많이 필요해질 이주노동자. 그들의 남해 생활은 어떨까? 가천 다랭이마을 ‘농부맛집’에서 일하고 있는 태국인 노동자 부부와 여성노동자를 만나보았다.

고향에 아이들을 두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
버스를 타고 가천에 닿았을 때는 해가 제법 기운 오후 6시 경이었다. 시간에 맞춰 ‘농부맛집’을 찾았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다랭이팜’을 경영하는 이창남 대표가 기자를 맞았다.

이주노동자들의 일이 끝나지 않아 먼저 이창남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태국노동자들과 같이 일한 게 4년 쯤 되었다고 했다. 5년 전인 2016년도에 태국인 부부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경기도에서 일하다 인연이 닿아 남해로 왔단다. 여성 노동자는 그보다 늦게 남해에 왔다.

이창남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의 성실함과 선량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러 모로 낯설고 힘들 텐데도 별다른 걱정을 끼치지 않고 일하는 그들이 없었다면 식당과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었겠냐며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인정이란 서로 주고받으며 돈독해지는 것이니, 이창남 대표의 정성과 배려도 한몫했을 것이다.

돌아갈 시간이 빠듯해 미처 씻지도 못한 세 분의 이주노동자와 마주했다. 기자가 놀란 것은 그들의 티 없이 맑은 눈빛이었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렸을 텐데 피로의 기색이나 일에 허덕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로지 돈 때문에 일하지 않고 이곳에서 보람을 찾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세였다.

또 놀란 것은 그들이 거의 우리나라 말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기자뿐만 아니라 이창남 대표 역시 태국어는 문외한이라 통역기를 통해서야 의사 전달이 가능했다. 기자가 아는 태국 말은 ‘사와디 캅(반갑습니다)’ 정도였는데, 그 말도 기억나지 않았다.

부부의 이름은 남편이 분추(Boonchu, 53세)씨고, 부인은 분라다(Boonrada, 38세)씨였다. 여성노동자의 이름은 프라파폰(PraPaPorn, 45세)씨였다. 세 사람은 태국 부리람(Buriram)에서 왔는데, 방콕에서 북동쪽으로 32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란다. 찾아보니 인구가 2만 5천여 명(2019년) 되고, 쌀과 소, 목재가 주요 생산물이다.

부부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고, 프라파폰 씨는 딸을 둘 두고 있었다. 모두 고향에서 친척들과 산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이 번 임금의 대부분을 고향으로 송금한다. 이창남 대표가 지낼 방을 내줘 생활비는 거의 들지 않는단다. 이곳에서는 적지만 고향에서는 목돈인 임금으로 가족들의 생계에 큰 보탬이 되니, 만리타국 땅의 단출하고 적적한 생활도 마냥 힘들지는 않겠구나 느껴졌다.

남해라는 섬에 자리한 또 하나의 섬
남해에서 지내며 가본 곳은 있는지 인상 깊은 추억은 무엇인지 물었지만, 그들은 웃을 뿐이었다. 차도 없는 데다 언어까지 막혀 휴일이 와도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저 태국 음식 재료를 주문해 가끔 그들끼리 요리해 먹는 게 작은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남해에서 지내기가 어떤지 묻자 남편 분추 씨가 통역기로 ‘행복해 행복해’라고 찍어 주었다. 불편한 점을 물으니 ‘언어 문제’라고 들려주었다. 그나마 이들은 좋은 고용주를 만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우리도 쉽게 담지 못하는 예쁜 언어를 나눠가질 수 있으니, 기자의 가슴에 뭔가 아릿한 아픔 같은 것이 일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해에서 오래 돈을 벌면서 일하고 싶은 심정일 듯했다. 이창남 대표는 지금 남해읍 평현에 공장을 지어 유자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라며, 올해 말 쯤 완공되면 다함께 옮겨 살 거라 전해주었다. 나름대로 숙련되고 성실하면서 정이 많이 가는 이주노동자를 만난 것이 자신에게도 행운이란다. 이주노동자 10여 명을 더 고용하겠단다.

읍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구촌이 멀리 있는 게 아님을 실감했다. 우리들의 막노동(?)을 대신해주는 그들을 마냥 낮은 임금으로 잡아둘 수 있을까, 최소한의 권리와 혜택을 부여하는 성의가 지구라는 ‘작고 푸른 별’에 동거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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