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2일부터 28일까지 한국서예일품전이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렸다. 최민렬 향우를 포함해 우리나라 유명 서예가 33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회 관람 후 인사동사거리에 위치한 건국관 내 최민렬 향우 서실을 방문했다.

묵향 자욱한 서실에는 그가 서예공부에 도움이 되고자 모으기 시작한 한글과 한문 자료가 상당량 보관돼 있었다. 40여 년 꾸준히 모아온 한글과 한문 자료가 130여 점이나 되고, 고서적과 고미술품 자료도 소장하고 있는데 수백년 전의 선인들이 펼친 서도예술의 진수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최민렬 서예가는 고미술 쪽에 관심을 가져 40여 년의 세월을 고서적과 고미술품 등을 수집해왔다. 전문지식을 갖기 위해 고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또한 고미술에 접근하여 고전 서적을 공부하고 익히는 과정에서 옛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82년부터 한글서예를 독학으로 공부해오다 1984년 운좋게 근현대 한국서단을 이끌었던 일중 김충현 선생의 제자인 초정 권장륜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40여 년을 배워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국전 초대작가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한문뿐 아니라 다양한 서체의 한글을 잘 쓰는 서예가로 알려져 있다.

소장본을 살펴보면 대체로 조선 중기에서 말까지 궁에서부터 사대부가의 가풍으로 전해오는 단아한 글씨도 많지만 한문 서체는 중국의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조맹부 등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비슷한 글꼴이 많다.

한글 자료는 목판본과 서간, 필사본을 볼 수 있다. 월인석보, 두시언해, 지장경, 삼국지는 익숙한 제목의 자료들이다. 한문자료는 서간, 서첩, 필사본과 금문이 선보였는데 삼봉집, 주역, 지리대전, 성학십도는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자료들이다.

소장한 필사본과 간찰을 선보인 최민렬 선생은 “우리의 옛 글씨들이 비록 지금의 서단과 같이 다양한 서체가 많지 않아도 세필의 기운 생동함과 달필의 오묘함에 매료되어 항상 즐거움과 설렘 속에 숙완고첩(宿玩古帖)의 정신으로 지낸 온 것은 기쁨 속의 나날들이었다”라며 필사본 소장의 의의를 밝혔다.

‘세종대왕’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문맹 퇴치를 위해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한글은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이 인류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지목하는 문자이다. 한글서예의 대가 최민렬 선생은 고금의 서도이야기와 앞으로의 서도에 대한 비전, 한글서예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섯 번 직업을 바꾸면서 서예에 정착해 오늘날까지 한 번도 싫증을 내지 않고 매진하고 있다.

그는 항상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서예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최민렬 서예가는 2005년 5월, 2007년 11월에 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초대개인전(우림화랑)으로 조선시대 한글 서예자료전(백악미술관)을 펼침은 물론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경기미술대전 서예부문, 동아미술제, 전국휘호대회에 초대 및 심사에 참여하였다. KBS 전국휘호대회 금상을 비롯한 수많은 수상기록을 가지고 있다. 대구예술대 서예과 겸임교수, 대전대 서예과 강사, 청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경기대 서예과 강사, 원광대 교육대학원 강사를 역임하는 등 대학에서 10년간 강의하였다. 현재 학국미술협회 이사로 있다.

남해에 서예박물관을 개관하여 고향에 또 하나의 문화명소를 탄생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2022년 10월에 남해읍 주원빌딩 4층에 서예미술박물관을 열고 군민들에게도 서예를 가르칠 예정이다.

“40여 년 넘게 수집한 고서적, 고미술품 등을 고향 남해에 박물관을 마련하여 고향의 문화 창달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최민렬 서예가의 계획을 듣고 남해에 서예미술박물관이 생긴다고 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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